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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귀네슈 감독의 입을 다물게 했는가

2009-09-11



올 시즌 17호 전북전 매치데이매거진이 이번주 12일(토) 전북전에 발행됩니다. 이번 매거진에는 안태은이 군대간 쌍둥이 동생 태선이에게 쓴 러브레터, 테마포토 '엠블럼키스 세리머니', '강력추천 데이트코스, FC서울 그리고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성용 브로마이드 등 다채롭고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매치데이매거진은 전북전 당일 각 게이트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 전문가 칼럼 "누가 귀네슈 감독의 입을 다물게 했는가"를 먼저 공개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전북전 매치데이매거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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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귀네슈의 감독의 입을 다물게 했는가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서울 사령탑으로 처음 부임했던 2007년 담당기자로서 그를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1994~1998년 부천을 이끌었던 니폼니시 감독 이후 가장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지도자가 K리그에 왔으니 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리그 초반 귀네슈의 열기는 정말 뜨거웠다. 특히 3월 21일 박주영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라이벌 수원을 홈에서 4-1로 대파하고 4월 18일 열린 리턴 매치에서 상암벌에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인 5만5397명이 운집하면서 이른바 ‘귀네슈 신드롬’은 절정에 달했다. 국내 각 매체들은 귀네슈가 일으킨 열풍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K리그에서 한 감독이 이토록 단기간내에 집중적인 각광을 받았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한 출판사에서 귀네슈에 대한 책을 쓰자고 제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필자는 ‘리그 초반이니 아직 귀네슈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할 시기가 아니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결국 귀네슈는 초반 돌풍에도 불구하고 처음 실시됐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부진한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쳤다. 그에게도 K리그의 적응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일년동안 귀네슈를 담당기자로 밀착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말이었다. 어찌 그리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던지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마 통역을 통하지 않고 그의 말을 직접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멋진 표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리 질문을 짧게 해도 답변이 너무 길어 당황한 적도 많았다.

국내 감독들의 천편일률적인 대답에 식상했던 필자에게 귀네슈의 현란한 레토릭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경기 하루 전에 출전 선수 엔트리를 제출하던 관행이 지금처럼 경기 당일 90분 전으로 바뀐 것도 “왜 한국에서는 출전 선수 명단을 하루 전에 내라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귀네슈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2002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로 이끌며 유럽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던 귀네슈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K리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공감을 얻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귀네슈가 느꼈던 K리그의 모순이나 단점들은 국내 지도자들도 충분히 알았을 터이지만,외국인 사령탑의 입을 통해서 터져 나오면서 울림이 더 컸던 작용 또는 반작용이 있었다.
귀네슈가 다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부 팬 사이에서 ‘반(反) 귀네슈’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형성됐다. 어떤 팬은 귀네슈에게 ‘입네슈’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름의 첫 글자인 ‘귀’가 한국어로 ‘귀(耳)’의 뜻이 있는터라 ‘귀’를 ‘입(口)’으로 바꾼 것은 제법 절묘한 말장난이기도 했다.
그랬던 귀네슈가 이제 말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6일 성남 원정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 앞으로 내 생각을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포항전이 끝나고 심판판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게 제재금 1000만원의 징계를 받은 뒤 그런 결심을 한듯하다.

필자는 귀네슈가 포항전이 끝난 뒤 한 이야기들 가운데 다소 과한 표현이 있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금도를 넘어선 표현은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기자회견에서 너무 고운 말들만 오가서야 어디 재미가 있겠는가. 경기 내용이 격렬했다면 말도 격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과정을 통해 팬은 또다른 재미를 느끼는 것 아닌가. 하지만 프로연맹은 ‘심판 판정에 대해서 도를 넘어서는 언행을 하는 것은 심판진 전체와 K리그를 모독하는 반스포츠적인 행위’라며 징계를 결정했다.

그날 귀네슈는 아마도 3년동안 있으면서 K리그에서 느꼈던 불만, 특히 심판에 대한 내용을 톤을 높여 이야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판 판정은 그동안 귀네슈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지도자가 제기했던 문제였다. 말을 막는다고 문제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귀네슈는 통역을 거쳐서 발언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 통역도 터키 사람이다. 국내 감독이 하는 말은 뉘앙스 자체가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달되지만, 귀네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귀네슈의 발언과 그 징계 과정이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일을 계기로 귀네슈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귀네슈가 언제까지 K리그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조금 더 그의 거침없는 발언을 듣고 싶다. K리그는 그 정도의 도량은 있어야 한다. “귀네슈 감독님, 더 말해도 됩니다. 입을 닫지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싶다.

글/ 위원석 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