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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1월호]스타와 일촌맺기⑧-한태유 선수

2006-01-02



큰 키에 다부진 생김새, 건장한 체격. 첫 만남이어서 그랬을까, 한태유 선수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살짝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라운드 위에서의 그 터프함이 자꾸 생각난 까닭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보아오던 이미지는 첫 인사를 하면서부터 와르르 무너졌다. 팬들이 '터미네이터'라 부르는 그 이면에 숨겨진 부드러움, 또 소탈함. 상상보다 훨씬 유쾌하게 진행된 이번 인터뷰는 스물 다섯의 청년 한태유가 들려준 도란도란한 이야기였다.

바람불면 훅 날아가던 한태유?
말투에서 살짝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 나온다. 울산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한태유 선수는 영락없는 경상도 사나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팬들이 '터미네이터'라 부르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어렸을 때 별명이 바람이었어요. 바람만 불어도 훅 날아가게 생겼다고요. 체구도 작았고 힘도, 파괴력도 모두 부족했어요. 중,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파워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는데 대학교 때부터는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죽자살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다른 건 없어요, 무조건 열심 또 열심. 시간 날 때마다 몸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제가 팔, 다리 힘이 얼마나 약하다고요.”

지금의 체격을 보면 절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란다. 지금의 몸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한 엄청난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키만 멀대 같이 컸던 셈.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몸이 많이 약했어요. 아프기도 많이 아파서 축구 그만둬야겠다 생각도 많이 했죠. 하지만 몸이 단련되고 나니까 확실히 부상도 많이 줄어들 뿐 아니라, 더 열심히 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년 차 징크스는 없다.
Sophomore Jinx(2년 차 징크스).
흔히 축구계에서 2년 차에 접어드는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태유 선수에게 2년 차 징크스는 없다. 기록으로 보아도 공격 포인트가 0이었던 작년에 비해 3골 1도움이라는 우위를 점하며 스스로도 자신감이 붙은 눈치다.

“사실 입단한 첫해에는 뭐도 모르고 그저 게임을 뛸 수 있다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공격포인트요? 아효, 생각도 못했죠. 하지만 올해에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껴요. 플레이 스타일이나 경기를 조율하는 데 있어서 많이 자신감을 얻었죠. 사실 게임을 뛰기는 작년에 더 많이 뛰었거든요. 하지만 양보다 질이죠. 게임 내용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1년 지나고 이 정도 발전했으니 또 1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거라 생각돼요.”

입단 첫해부터 받은 보직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사실 한태유 선수가 처음 맡게 된 포지션이다. 하지만 한태유 선수는 이 자리가 “더없이 좋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공격 쪽을 많이 봤어요. 그렇지만 우리 팀에서 공격에 어디 비집고 들어갈 데가 있나요. 제가 플레이하기도 편하고요, 만족합니다. 전 사실 특별한 기술이나 개인기 같은 건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을 바꿨어요. 열심히 뛰자, 경기장에 나갈 수 있다면 내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내세울 수 있는 건 열심히 뛰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요."



센스 없는 주영이
올 시즌 데뷔 골을 포함해 3골을 성공시킨 한태유 선수. 공격 포인트는 팀 전체 뿐 아니라 선수 자신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한태유 선수,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아, 제가 골 넣은 날은 꼭 주영이가 넣어서요. 제가 골 넣은 건 기사에 나오지도 않아요! 주영이 녀석이 센스가 부족하다니까요?” 말을 끝내고 키득키득. 절대 박주영 선수를 탓하는 표정이 아니다. 형님 하나, 아우 하나 사이 좋게 골을 넣은 것이 벌써 세 번째. 그 중 10월 23일 수원과의 원정 경기는 한태유 선수가 꼽는 Best Game이다.

“정말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동기 유발이 된 거죠. 그 날 따라 선수단 전체의 컨디션이 참 좋기도 했고요. 주영이가 첫 골을 딱 넣는데, 그 때부터 경기가 너무 잘 풀리는 거에요. 올 시즌 최고의 경기였죠. 저도 골 맛을 봤고요.”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을 물으니 지난 5월 22일 광양구장에서 열린 전남과의 경기에서 터진 시원한 중거리 슛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원하고 깔끔한 한 방, 털털한 한태유 선수답게 강력한 중거리 슛을 좋아하는 듯 했다.

“제가 예전부터 슈팅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다리 힘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닌데.. 발목 힘이 좋아서 그런가? 아무튼 시원하잖아요!”

팀의 살림꾼이 되고 싶어
수비형 미드필더, 눈에 확 띄는 포지션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경기를 읽는 능력, 공격과 수비 사이의 조율, 거기에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상대팀 공격의 맥을 끊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 한태유 선수는 홀딩맨으로써의 자신의 플레이에 “아직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보완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아요. 아직 제가 팀 내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전 정말 꾸준한, 기복 없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가 예전부터 수원의 김진우 선수를 참 좋아했거든요. 묵묵히 중원에서 팀을 이끌잖아요. 빛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저 팀에서 꼭 필요한 살림꾼이 되고 싶어요.”

2006시즌을 시작하고 있는 지금 선수들은 각자의 몸 만들기에 한창이다. 내년 1월에 실시될 동계훈련을 대비하고 있는 것.

“작년에는 제가 부상을 당해서 동계훈련을 못 갔거든요. 사실 이번 시즌 시작할 때 걱정 정말 많이 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했던 훈련을 저는 못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꼭 가야죠, 동계훈련이 1년 성적을 좌우한다고들 하잖아요. 조금 힘들 것 같아서 걱정도 되지만 몸 잘 만들어서 동계훈련도 잘 다녀오겠습니다!”



스물 다섯에서 스물 여섯으로...
1981년 3월 31일 생, 2006년 1월부로 스물 여섯의 청년 한태유. 결코 어리다고 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꼭 거쳐야할 것이 있다. 바로 군대.

“사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군에 입대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팀 성적도 좋지 않았고.. 이왕 가는 거 정말 열심히 해서 우승컵도 안아보고 가고 싶어요. 전 정말 뒤끝 없는 성격이거든요. 이대로 가면 여한이 많이 남았을 거예요. 이제 군 들어가기 전 마지막 1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뛰려고요. 정말 여한 없이요.”

돌아보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구 인생이었다. 학성 중학교 시절, 게임을 많이 뛰어야 학성고 감독님의 눈에 들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깨 부상으로 인해 1년여를 쉬면서 고등학교 진학도 겨우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때도 다르지 않았다. 축구 명문 학성고의 선수로서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2002년 겨울이었나요, 대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제가 평생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었는데 그 때 올림픽대표팀에 뽑힌 거예요. 진짜 행복했어요. 온 세상이 다 제 것 같았죠. 뭐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릎 부상 때문에 올림픽까지 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제 인생에 그런 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숙소생활도 이제 3년째에 접어들게 된다. 평소에 시간이 나면 근처 피씨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이 보통. 특별히 누구와 가느냐고 묻자 “밥 먹고 피씨방 가면 다들 게임하고 있어요. 누구랑 간 다기 보단 그냥 가서 거의 다같이 하는 편이죠.” 남자들만 같이 생활하다 보니 서로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룸메이트는 이정열 선수. 생각해보니 지난 7월 웹진에서 나온 숙소 탐방에서 끝끝내 볼 수 없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살짝 서운했다고 운을 떼니 “oh, no!”라는 표정이다. 지저분해서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것. 아, 슬프다. 방 구경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가! 하지만 끝끝내 ‘다음에 한번 더 오세요’라는 초대는 받지 못했다.

한태유 선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참 현실적인 선수를 마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10년 뒤, 어떤 선수로 남고 싶으냐 묻자 바로 돌아온 대답은 ‘앞으로 10년 동안 뛸 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독백이었다. 그는 큰 꿈을 꾸지 않는다. ‘성실한 선수였다’라고만 남아도 성공한 축구 인생이라는 것.

여태까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께도 이제는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어린 나이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주신 것 그 이상으로 해드려야 한다는 것이 한태유 선수의 생각.

“아버지가 울산에서 20년이 넘게 개인택시를 하셨어요. 열심히 일해서 제 뒷바라지를 해 주셨는데 이제는 제 차례죠.”

지난 12월 16일 ‘서포터스와 함께한 송년파티’라는 이름 하에 짧은 시간동안 팬들과 함께 했었던 것에 대해 한태유 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그렇게 만나는 자리, 너무 좋았어요. 팬들도 오랜만에 봐서 더욱 좋았고요. 그런데 그렇게 만나는 것보다는 야외에서 큰 테이블 꺼내놓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만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살짝 술잔도 기울이면서..(웃음) 그럼 좀 더 친밀해 질 것 같은데 말이죠. 이렇게 추울 때 말고요, 봄에 날 좀 풀린 다음에 그런 자리 한번 더 만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런가요?”

그의 소탈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러다가 봄에 한번 더 모이게 되는 건 아닐까? 말을 주고 받으며 한태유 선수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제 2006년이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1이라는 숫자 앞에 서서 이제 우리 선수들은 다시 뛰기 위해 신발 끈을 질끈 묶는다.

“올해 참 많은 분들이 좋은 성적을 기대해 주셨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 내년도 있고 그 다음해도 있으니까요, 응원해주신다면 좋은 결과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경기도 많이 이기고, 우승도 하고 해야 보너스도 많이 받고..(웃음) 저는 내년 시즌에 기회가 되는대로 골도 많이 넣고 싶고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몸 잘 만들어서 부상 없이 동계훈련 잘 마치고 리그 때 펄펄 날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얀 옷을 입은 구리 챔피언스 파크. 산과 강이 둘러싸여 있어 그 어느 곳보다도 매섭게 추운 겨울날씨임에도 우리 선수들은 뛰고 있다. 이렇게 흘리는 땀방울들이 하나씩 모여 우리는 승리를 쟁취해 낼 것이다.
2006년, 굳건히 우리의 중원을 지켜주는 한태유 선수의 듬직한 모습을 기대한다.


글= 오현정 FC서울 명예기자
사진= FC서울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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