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복장 이런데 인터뷰해도 되나..
연습복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긁적,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에는 휴대폰과 메모지를 들고 수줍은 미소로 나오는 남자. 면도는 안 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터프', '멋'이 흐르는 남자. 그리고 그것이 또 매력인 남자. '튀르크 전사' , '2002년 4강 전사' 이 두 수식어만 떠올려도 떠오르는 사람.
많은 팬들이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바로 뇌리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남자. 그렇다, 바로 '튀르크 전사' 이을용 선수다. 기나긴 터키 생활을 마치고 친정팀인 FC서울로 복귀한 우리들의 '영원한 전사' 이을용 선수가 드디어 FC서울 웹진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내줬다.
2006 K리그 만큼은 FC서울의 해로 만들겠다는 그의 굳은 각오와 눈물어린 가족 이야기까지. 말이 없고 수줍음 많은 그가 소중한 FC서울 팬들을 위해 허리가 뻐근할 정도까지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줬다. 거칠기보다는 순수하고 부드러운 남자 이을용의 FC서울 이야기와 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는 원래 안 좋아하는데…
"원래 인터뷰를 잘 안 해요. 체질상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프로선수라고 하면 떳떳하게 인터뷰에 응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인터뷰 안 하기로 소문나서 다들 그러려니 해요. (웃음)"
원래는 인터뷰가 어렵다는 이을용 선수. 얼마나 인터뷰가 불편했으면 대표팀 소집 때는 기자들을 피해서 옆문으로 들어갔을 정도라고. 그러나 FC서울 웹진 독자들을 위한 인터뷰는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는 이을용 선수다.
FC서울에 오니까 참 좋더라
늦은 감이 있지만 FC서울에 와서 좋은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일단 팀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린 선수들과 선배 선수들 간의 밸런스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또 그는 "서울에 오니까 가족들이 무척 좋아하죠. 얼굴도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 자신도 해외에 오래 있다가 들어오니까 심적으로 너무 편해졌어요"라며 만면 가득한 웃음을 짓는다.
달라지는 서울, "난 K리그나 유럽리그나 똑같아"
K리그 최고 인기구단으로 거듭나고 있는 FC서울에 대한 느낌을 묻자 이을용 선수는 머뭇거리지 않고 유럽리그를 경험한 선수답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선 우리 구단의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첫 번째로 팬들 위주의 서비스나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로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페어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럽식의 구단운영 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유럽리그에 있는 실력 좋은 선수들이 국내에 오면 K리그도 유명한 프로리그가 된다고 말하는 이을용 선수. 그는 '다 똑같다'라는 말을 한다. "재정이나 구단들의 역량이 유럽수준에 조금 못 미쳐서 그렇지 다 똑같아요. 그 선수들도 축구 선수고, 우리도 축구선수에요. 거기도 축구리그고 우리도 축구리그고요." 도무지 유럽축구가 K리그랑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K리그도 충분히 열광적인 프로축구 리그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이제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팬들이 진정으로 팀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을용 선수. 선수들이 열심히 하면 팬들도 자연스레 따라와 준다는 그의 말은 언제나 들어도 정답이다.
내 자리는 '중간 역할'
"그라운드에 나가면 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중간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장수 감독도 선수단 내에서나 미드필더진에서 중간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특히 미드필더진에서는 득점기회를 만들어 내고,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바로 지시를 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병지형은 골키퍼고, (이)민성이 형은 중앙 수비수로 뒤를 받쳐주고 있거든요. 이제 제가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미드필더진, 기량 면에서는 평균 이상이에요. 앞으로 세밀한 플레이만 좀 더 신경을 쓴다면 더 좋은 조직력이 발휘될 것 같아요. 히칼도는 단연 뛰어나고 고명진, 천제훈, 한동원 같은 선수들이 어리지만 기량이 뛰어나잖아요.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욱 무르익을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 제가 중간 역할을 잘 해야겠죠."
현재 후기리그 7라운드,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서울이 추구하는 축구는 ‘공격축구’다.
"이장수 감독님은 한마디로 공격, 확 밀어붙이시는 스타일이세요. 1골을 실점해도 충분히 2~3골 넣어서 이기는 쪽을 선호하시죠"라며 이장수 감독의 공격축구에 대해 설명한다.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성격과도 연관 되냐고 묻자 "어우~당연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긴 이장수 감독의 화끈한 성격을 떠올려보면 '화끈한 공격축구'가 딱 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태은이는 워낙 '활발', 주영이도 '활달(?)'
젊은 선수들과는 어떠냐고 묻자 "어떤 선수들은 삼촌이라 부르고, 어떤 선수들은 형이라 부르기도 해요. 그런데 선배보다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게 좋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너무 좋아요"라고 답한다. 아무래도 안태은 같이 활달한 선수는 더욱더 친근하게 대할 것 같지 않은가.
"(안)태은이는 장난 잘 쳐요. 선배들 보면 어려운 것 없이 장난도 잘 치고 그래요. 참 좋아요. 그 녀석은 넉살도 좋아요. 운동하려면 그런 성격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박)주영이는 의외로 말이 많아요. 밖에서 인터뷰 때나 말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죠. 숙소나 훈련장, 치료실 같은 데서는 말을 많이 해요. 말이 없는 애가 아니에요. 활달하고 성격이 참 좋아요."
형님들끼리 모이면(?) '솔선수범' 하자!
이민성, 김병지, 김한윤, 김은중 같은 선배 선수들끼리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자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일단 두 가지를 항상 이야기하고 되새겨요. 첫 번째는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자는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열심히 하면 밑에 어린 선수들도 자연스레 보고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는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밑에 선수들을 혼내기보다는 잘 다독거려주고 격려해주자는 것이죠"라고 말했다.우리 형님 선수들은 언제나 아우 선수들한테 '선배'이기보다는 정말 '형'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이 진정 FC서울이 아닌가 싶다.
국가대표 '후회도 미련도 없다'
"미련이 남았으면 은퇴 안 했죠~"라며 웃는 이을용 선수. 어쩌면 당연한 질문일수도 있다. 그는 이미 각종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해 국가대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국가대표 하면서 2002년 월드컵 때 4강 이룩한 것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네요... "라며 잠시 당시의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배로서 가장 가능성 있는 후배 선수를 묻자 대번에 후배인 정조국 선수를 꼽는다. 지금 베어벡 감독의 대표팀 체제에서 가장 빛을 보는 선수 역시 정조국 선수다.
"2002년에도 대표팀에 연습생으로 들어와 히딩크 당시 감독과 베어벡 코치(현 대표팀 감독)가 (정)조국이의 잠재력을 많이 봤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지금은 성장을 많이 했고, 생각도 많이 깊어진 것 같더라고요. 자기 컨트롤을 잘해요. 조금 더 지켜보면 분명 발전할 선수에요. 앞으로 한국축구에 그만한 공격수 나오기 힘들걸요? 우리 축구를 이끌어 나갈 재목이에요."
지인들은 '순둥이'라 불러
팬들이 이을용 선수는 터프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하자 "선수라고 하면 경기장에 나가서 터프해야 해요. 상대를 이겨야만 그날 시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팀이 승리할 수 있는거죠. 그런데 뭐 저 스스로 터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말을 잘 안 해서 지인들은 절 순둥이라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반면 아내 이숙씨는 이을용 선수와는 성격이 정반대라고 한다. 터키에서 생활할 때는 아파트 부녀회장(?)직을 수행할 정도였다고.
"아내는 정말 활달해요. 사교성도 좋고요. 저랑은 정반대에요. 실업팀에 있을 때 선배 소개로 만나서 연애하다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 결혼했어요. 연애를 한 6년 정도 했어요. 운동선수들은 원래 연애를 오래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아이들한테 항상 미안해
아내 이숙씨, 첫째 아들 태석이, 막내 아들 승준이가 바로 이을용 선수의 행복한 가족이다. 그런데 이을용 선수는 두 아들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모든 축구선수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할 것이다.
"요즘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 집에 많이 간대요. 그래서 저도 흉내는 내 보려고 하는데..(웃음) 큰 아들 태석이는 많이 커서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를 종종 하나 봐요. 예전보다는 얼굴을 자주 본다지만 매일 보기는 힘들어요. 게다가 저는 정해진 시간, 하루에 8~9시간은 꼭 자는 것을 필수 사항으로 지키고 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몸이 힘들어서 다음날 운동을 못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어떨 때는 운동 나가지 말라고 울기도 하거든요. 지금 한창 부모님 사랑받을 나이인데... 지금 그럴 때 같이 못해주는 게 너무나도 미안해요..."
아이들 이야기를 하자 눈시울이 조금은 붉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이 생각이 나는지 얼굴에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한 이을용 선수. 아내 이숙씨는 두 아들 중에 한 명이 재능이 있다면 아버지처럼 축구를 시켜 볼 생각이 있다고. "요즘 큰아들 태석이가 '슛돌이'라는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 나가는데요. 외국에서 자라서인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기회가 와서 시켰어요. 첫 번째 방송에서는 안 하겠다고 울고 그랬는데 지금은 슛돌이에 있는 형들이랑 어울리기도 하고 공도 차니까 달라졌더라고요.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앞으로 슛돌이 하다 보면 축구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될 텐데요. 재능이 있다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축구를 시켜볼 생각도 있어요.(웃음)"
향후 유소년 육성이 꿈
이미 여러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가 은퇴한 이후에는 유소년 육성에 힘쓸 것이라고.
"지금 틈틈이 공부도 하고 있어요. 2002년 이후에 유소년 축구가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또 그에 반해 초중고 축구가 많이 힘들어졌어요. 그 이유를 찾고 연구할 생각이에요. 결국, 유소년 축구를 활성화 시켜야 한국축구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그래야 미래가 있어요."
팬들의 사랑 너무나도 고마워요
요즘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박주영이나 정조국, 안태은, 한동원 같이 젊은 선수들 못지 않게 이을용 선수의 이름이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어른, 학생, 어린 아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을용 선수를 응원한다. 이에 이을용 선수는 "감사합니다. 제 이름을 불러줄 때 많은 힘이 되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고요.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K리그는 팬들이 살려주시는 것 같아요. 경기장에 많이들 오셔서 응원해주세요"라며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화려한 패스와 날카로운 킥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팬들에게 멋진 어시스트와 골로 성원에 보답할 것은 당연하다.
FC서울은 매력적인 팀이다
"대학선수들이나 고등학교 선수들한테 어느 팀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다들 FC서울이라고 해요. 그리고 FA로 나오는 선수들도 FC서울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구요. 그만큼 매력적인 팀이에요. 우승을 해보면 다른 때보다 몇 배 더 감격스러울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FC서울 웹진 표지촬영에 응해준 이을용 선수. 오랜 시간 이루어진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한 미소로 끝까지 명예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구리 GS챔피언스파크의 가을 길을 걸었다. "꼭 우승해 주세요~파이팅!"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자 "예! 그래야죠!"라며 자신있는 밝은 표정을 짓는다. 이을용 선수가 처음 FC서울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본 명예기자가 떠오른 말은 바로 '든든함'이었다. 그만큼 이을용 선수는 FC서울에 있어서 든든한 선수다. 그의 열정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FC서울이 2006년을 '우리의 해'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글=문인성, 오현정 FC서울 명예기자, 사진=김주용,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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