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share > 페이스북

NEWS & TV

News

[웹진12월호]스타와 일촌맺기⑦-정조국 선수

2005-12-01



2005시즌이 끝났다. 11월 9일, 마지막 경기였던 전남전이 끝나고 눈물을 흘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선수들과 코칭 스텝, 많은 팬들은 모두 내년, 2006시즌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이곳에 마음을 다잡고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 대망의 2006시즌을 준비하는 한 청년이 있다. 바로 패트리어트 정조국 선수. 2주 가량의 휴식을 끝내고 개인 훈련을 시작한 정조국 선수를 11월 24일 구리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나보았다.


2006시즌은 벌써 시작되었다.
11월 22일, 아드보카트 국가대표팀 감독이 1월 전지훈련 상비군 명단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반가운 이름 석 자, 정조국. 그리고 그 날 저녁, 지상파 방송 스포츠 뉴스에서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정조국 선수의 짤막한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살짝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우리 선수들은 분명 지금 휴가 중인데? 알고 보니 정조국 선수는 11월 22일부터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는 것. 그렇다면 지난 2주간의 휴가를 어떻게 보냈나, 살짝 궁금해져 왔다.

"시즌 끝나고 정말 모처럼 푹 쉰 것 같아요.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몸에 좋다는 음식도 많이 먹으러 다녔어요. 시즌 막바지에는 사실 조금 힘이 들었었는데 잘 쉬고 나니 몸이나 마음이 모두 좋아진 것 같아요. 부산, 남해로 여행도 다녀왔고요."

프로팀들에게 시즌을 준비하는 겨울 3개월은 무척 귀중한 시간이다. 프로 입문 벌써 3년, 그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정조국 선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앞서서 몸을 만들기 위한 훈련에 돌입한 것이다.

"이제 팀 동계 훈련도 있고 중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다른 거창한 것은 없고 지금은 가벼운 조깅이나 웨이트 정도를 하고 있어요. 사실 2005 시즌에 성적이 많이 좋지 않아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더욱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 2006시즌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축구가 너무 좋았다.
정조국 선수가 축구를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차범근 축구교실로 인해서였다. 갈현 초등학교 1학년, 그저 공을 좋아하던 작은 소년은 그렇게 축구에 눈을 떴다. 남들은 일주일에 2번도 힘들다고 하는 것을 일주일에 5번이나 꼬박 꼬박 빠지지 않고 다니기도 했단다.

"그 때는 축구를 하는 것 자체가 정말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만사 제쳐두고 축구교실에 갈 수 있는 날은 다 갔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았다 싶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해요."

그렇게 시작한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당시의 포지션은 바로 미드필더였단다. 현재 맡고 있는 포지션인 최전방 공격수의 역할과 비교해서 어떤지를 물으니 정조국 선수의 눈이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킬러의 눈이었다.

"모든 포지션에는 다 각자의 매력이 있겠지만 역시 공격수라면 골이라는 매력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참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골을 넣을 때의 그 희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열광한다는 게 행복하죠."



축구선수, 정조국
대신고 시절, 청소년 대표로 웬만한 성인선수만큼 이름을 떨쳤었다. 여전히 잊지 못할 경기가 있다면 2002년 한일전, 그림 같은 결승골로 카타르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때일 것이다. 그 때를 돌아보며 참 행복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골을 넣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선수들 모두가 너무 열심히 해서 우승을 일궈낸 거죠. 지금 생각해도 그 골 정말 멋있었던 것 같아요. 그쵸?"

2003년 프로 첫 해에 들어서는 최성국 선수를 제치고 신인왕에 뽑히기도 했다. 정조국 선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제가 참 부족한 게 많았는데 신인왕이라는 큰상을 주셨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받을 수 있는 상이라서 자부심도 들고 정말 좋은 추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제게 독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랬을까요, 하늘에 붕 뜬것만 같았고 거품이 많았죠. 무서운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때에 비해 지금은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한 것 같습니다."

그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2003년 데뷔 첫 해를 빼놓고 정조국 선수는 그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2004년에는 올림픽 대표에서 제외되고 팀에서 역시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으며 올해에는 박주영 선수라는 걸출한 신인이 등장하면서 사실상 출장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프로에 들어온 후 지난 3년은 기쁜 일도, 좌절도 많은 참 굴곡이 심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 시간 모두 버릴 게 하나 없는 배움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다 좋은 기회였죠. 올 시즌 역시 후반기 외에는 많이 부진했어요. 주영이요? 좋은 선수죠.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고 하잖아요. 데뷔 첫 해에 그 정도로 했다는 게 대단해요, 제가 잘 못했던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해요. 앞으로 보완할 게 많지만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에요."

평소 이장수 감독님은 정조국 선수에게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라는 짧고도 굵은 멘트를 가슴에 새겨주신다. 그것이 스트라이커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것. 공격적인 주문 외에 적극적인 수비가담에도 무게를 많이 두시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조국 선수를 믿고 자유롭게 뛰도록 해주신다.

"게임에 뛰었던 시간은 그것이 단 1분이라도 정말 소중했습니다. 앞으로 정말 더 열심히 해서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할겁니다."



스물 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길목에서
10월 경이었던가, 언론을 통해 '비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래, 말 그대로 비보였다. 정조국 선수가 서울을 떠나 광주 상무로 입대한다는 소식.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고 안타까움을 표했으며 사실 붙잡고 싶은 마음도 컸다. 천년 만년 우리 선수로써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을 것만 같던 정조국 선수가 떠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장수 감독님의 권유로 입대를 연기하면서 많은 이들은 다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니 의외로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입대를 결정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그게 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감독님이 제게 '1년만 더 열심히 하자'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말을 따랐습니다. 저는 감독님과 함께하는 선수니까요.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궁금해 하시던데 간단한 문제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웹진을 통해 이미 여러 번 밝혀진 사실, 바로 정조국 선수의 숙소 생활이다. 방은 2층이건만 1층에서 훨씬 더 많이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묻자 즐거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답을 해준다.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요.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요. (백)지훈이는 저에게 그런 친구에요. 여자 분들이 보시면 어쩜 질투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너무 사랑해서 항상 곁에 있고 싶거든요. 그러다 보니 1층에 많이 가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지훈이 룸메이트가 숙소를 나가서요, 이제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 거죠."

백지훈 선수도 얼마나 친구 자랑을 많이 했었던가. 이 두 청년들을 생각하니 얼굴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언제나 꿈꿔왔던 대표팀
2006년. 시즌도 중요하지만 내년에는 지구촌을 뒤흔들 대 축제인 월드컵이 열린다. 그 무대에 뛰는 것이 모든 선수들의 꿈이라고 할 정도로 월드컵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2002년, 4강 신화를 이룩하는 그 자리에서 연습생의 역할로 함께 했던 정조국 선수 역시 그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뛰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죠. 그래서 더더욱 월드컵 무대에서 뛰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그 때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온 국민이 축구로 인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이제 다가올 1월 대표팀 전지훈련 상비군 명단에 포함된 정조국 선수. 그에 대한 기쁨은 잠시, 각오는 비장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꿈은 꾸고 있었지만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거든요. 저 하나로 인해 주변 지인들이 너무 좋아해 주시고 축하해 주시니 그것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제게 기회가 단 1분 1초라도 주어진다면 그 능력을 다른 곳이 아니라 그라운드 안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올 시즌 후반 들어 다시 컨디션을 회복한 정조국 선수 본인만큼이나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다름 아닌 팬들이다.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던 일이었던가. 팬들이 정조국 선수를 보며 가슴 설레하듯 그 역시 행복하다.

"경기장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저 밑에서 힘이 막 올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를 위해 날씨 상관 않고 와주신다는 게 너무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특히 올해 정말 많이 와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리고요, 특히 써포터들께 고맙습니다. 잘 해야겠다고 책임감도 많이 느꼈는데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정말 잘 하고 싶었는데 좋은 성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매 경기 N석에서 목이 터져라 흘러나오는 서포팅 송을 알까 물으니 당연히 다 기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 감동이다. 여기서 잠깐! 딱 한 곡만 불러달라고 말하니 정조국 선수, 딱 잘라 말한다. "비밀이에요, 그런 건 고이 간직해야 하는 거에요."

10년 뒤, 서른 두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정조국 선수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제가 전남 황선홍 코치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선수로써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 생각해요. 선배님을 보면서 전 정말 많은 꿈을 꾸었어요. 나도 저런 선수가 되야지, 저런 골을 넣고 싶다 등등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많은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그런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배울 점이 있는 선배, 꿈꾸고 싶은 선배. 그런 사람이요."

이제 2006시즌이다. 2005년을 마무리하며 정조국 선수의 각오를 들어보았다.

"2006시즌은 제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올해에 하지 못한 것을 이루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노력 없는 대가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많은 격려와 질책,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정말 좋은 경기 보여 드릴 겁니다. 그것이 저희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2006시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글= 오현정 FC서울 명예기자
사진= FC서울 홍보팀



* 본 기사와 사진들은 FC서울과 강동희님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허가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임의로 수정하거나 편집하는 것을 금합니다.

☞웹진 다른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