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 너 몇 번이야?” “나? 10번”
“아빠는?” “1번”
“너 팀은 무슨 팀이야?” “FC서울”
“아빠는?” “아빠도 FC서울!”
내 삶의 전부인 아내와 두 아들!
FC서울의 카리스마 넘치는 골키퍼 김병지 선수도 집에서는 영락 없는 아빠의 모습이다. 김병지 선수의 두 아들 태백이와 산이. 두 아이들의 이름을 합치면 ‘태백산’. “우리나라의 중추에 위치한 태백산처럼 맑고 신성한 정기를 받으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지어놓은 이름이에요.” 아버지 김병지 선수의 설명이 진지하다.
형인 태백이는 올해 여덟 살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기간 중에 태어나 대표팀 소집기간 중에 히딩크 감독의 허락을 받고 달려 나와 태백이와 함께 탯줄을 잘랐던 막내 산이는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김병지 선수의 가족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아내와 태백이, 그리고 산이는 저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왜 하느냐고 묻곤 하는데, 정답은 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오직 가족을 위해서 저의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김병지 선수가 하는 첫번째 일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문 앞으로 달려 나오는 태백이, 산이와의 입맞춤이다. “현관 열쇠가 있지만, 이런 모습이 좋아 일부러 초인종을 누른다”고 ‘아빠’ 김병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들을 통해 느끼는 아버지
“결혼을 하고 아내와 둘이 살 때는 가족이라는 개념보다는 설레임으로 좋았어요. 그런데, 태백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분명히 또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이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겼다는 느낌일까요?”
김병지 선수는 아들 태백이를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느끼고 자식의 역할을 배운단다. 행동이나 외모가 닮아서가 아니라 아빠가 되고 나니,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들과 그때는 잘 몰랐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단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쳐도 마음이 아프고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느끼는데, 나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라고 깨닫게 되고, 또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확실히 달라지더라구요. 태백이가 저를 가르치고 있는 거죠.”
축구선수, 그리고 축구선수의 아빠
애석하게도 축구선수는 유명해지면 질수록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지금은 태백이가 커서 아빠가 유명한 축구선수 ‘김병지’라는 것은 대충은 아는 거 같아요. 그래도 때로는 아빠가 자기랑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때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김병지 선수의 말에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내 김병지 선수는 밝은 표정으로 “할려고 하는데, 역시 아이들에게는 잘 놀아주는 아빠가 좋은 아빠인가 봐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집에서 같이 놀아주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생활을 하는 다른 아빠들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김병지 선수가 평소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그런 부분이다.
“저는 태백이, 산이 두 아이들을 모두 축구선수로 키우려고 해요. 성공이냐 실패냐는 자신들의 몫이고, 어느 정도 운도 따라 줘야 겠지만, 땀 흘리지 않으면 남보다 잘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도 배우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 신체도 정신도 건강해지는 그런 부분 때문에 운동 선수로 키우려고 해요. 그리고 그 종목이 저와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축구죠.”
태백이는 골키퍼, 산이는 공격수로..
태백이와 산이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와 함께 했다. 가장 많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축구공이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A매치 경기의 입장식 음악인 ‘Fifa Anthem’이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FC 서울의 유소년 축구단인 리틀 FC서울에서 훈련을 시작한 태백이와 산이. 태백이의 포지션은 아빠와 같은 골키퍼이고, 산이의 포지션은 공격수다. 어린 나이지만 벌써부터 또래들과는 다른 선천적인 재능을 보이고 있다.
“보통 부모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면 축구선수를 시키겠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 부분을 인지해서 시작할 때에는 이미 늦어요.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가 될 텐데, 그 때 축구를 시작하는 건 너무 늦었다고 볼 수 있어요.” 김병지 선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는 주로 거실에서 축구를 해요.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가능한 일이지만 태백이는 요즘 원 바운드 된 볼을 잡는 연습을 하고, 산이는 아직 많이 어리지만 임펙트가 좋아서 킥력이 대단해요. 집안이다 보니 맨발로 공을 차게 되서 발이 분명히 아플 텐데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발이 시뻘개질 때까지 공을 차요. 그러다가 저번에는 발톱이 빠진 적도 있을 정도에요.”
어린 아이들에게 축구가 어떤 방식으로의 훈련이라기 보다는 놀이이면서 훈련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빠’ 김병지 선수의 생각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할 때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축구연습을 놀이화 시켜서 하고, 반드시 스트레칭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운동 선수인 아빠이기에 놀이 과정에서도 세심한 지도가 가능하다고 김병지 선수는 말을 이었다.
“태백이는 골키퍼, 산이는 공격수로 키우고 싶어요. 아이들 둘이 같은 포지션이면 나중에 서로 경쟁 하다가 괴로워질 수도 있잖아요.”(웃음) 이런 게 바로 아빠의 마음이 아닐까?
태백이와 산이는 FC서울의 홈 경기가 열릴 때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는다. 그리고 리틀 FC서울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는 이들 두 아이들은 워낙 축구를 좋아해 그라운드 위에서 플레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다. 김병지 선수도 가족들이 보러 오는 경기에는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선수들이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 팬들이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아내과 아이들도 승리하면 집으로 돌아갈 때 발걸음 가볍게 돌아갈 수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단다..
더 좋은 아빠 되기
“지금 아이들이 한참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시기인데, 많이 놀아주는 아빠가 돼야죠. 축구 선수인 아빠를 기다려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3~4년 정도 지나고 은퇴를 하게 되면, 그 때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할 나이가 될 텐데, 그때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야죠. 그리고 그 때는 아내가 그 동안 가정을 위해 희생해준 만큼 외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병지 선수는 이번 어린이날 태백이네 반 친구들 모두에게 사인볼을 선물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놓았단다. 누구나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축구공이기 때문에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김병지 선수의 생각이다. (태백이랑 산이는 참 좋겠다!)
여행으로 다지는 가족사랑
김병지 선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으로 사랑을 다지고 있다.
“지금까지 저의 가족들에게 많은 희생을 바라며 생활해 왔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비 시즌에 감독님이 휴가를 좀 많이 주시면 일년 동안 못했던 아빠노릇을 좀 만회할 수 있을 텐데, 휴가를 좀 길게 주셨으면 좋겠네요.(웃음) 2003년에 온 가족이 유럽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빌린 자동차로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녔더니 파리 시내를 서울 시내보다 더 잘 알겠더라구요. 또 이탈리아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에 태백이가 갑자기 아파서 약국을 찾아 밤새 헤맸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며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보따리 풀듯 풀어냈다.
행복해 보이는 김병지 선수에게 그들의 가족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독일월드컵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는 5월 11일에 발표되는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히게 되면 가족들이랑 한 달 이상 떨어져 있게 될 텐데 많이 보고 싶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내 “그런 부분들은 이미 아내와 아이들도 익숙해져 있다. 말을 해보면 축구를 하는 아빠를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며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독일 월드컵 출전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가족을 위해 축구를 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는 어린 두 아들 태백이와 산이. 김병지 선수의 두 아들은 K리그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아빠처럼 독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골키퍼로 눈부신 선방을 펼쳐보이는 ‘태백산의 아빠’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K리그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김병지! ‘아빠’ 김병지 역시 최고의 수문장답게 두 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고, 장차 훌륭한 축구선수를 길러낸 아버지로 다시 한번 당당히 우리 앞에 서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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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광식 FC서울 명예기자, 사진/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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