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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7월호]김광식 명예기자의 월드컵체험기 - 구텐탁!

2006-07-03



프랑크푸르트.
아직도 변함없이 ‘차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도시이면서 최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신들의 지역 라이벌 팀인 마인츠05 구단으로 이적한 차두리 선수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 무엇보다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G조에 속한 한국 대표팀이 첫 경기를 치른 이 곳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잉글랜드가 베컴의 프리킥으로 비롯된 파라과이 수비수의 자책골로 1대 0의 첫 승리를 거두던 날 경기 직후 나는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했다. 얼마나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이 왔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지하철 역과 시내에는 잉글랜드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축구 종가에서 온 사람들의 승리 세레머니란 이런 것 인가. 거리 한 구석에서 맥주를 마시던 누군가가 승리의 기쁨에 겨워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한 목소리를 낸다. 그들은 1966년 월드컵 우승 이 후 최고의 전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자국 대표팀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밤거리에서는 우연히 잉글랜드 훌리건들을 만났다. 낮에 보았던 종가의 자부심과는 또다른 잉글랜드 축구의 이면이었다. 이미 파라과이와의 경기전 날 프랑크프루트 시내에 도착한 대규모의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뢰머광장에서 독일 축구팬들과 한 차례 큰 마찰을 빚어 도시 전체가 시끌벅적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미 도시 곳곳에서 무장한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두툼한 카키색 옷에 독일어로 경찰이라는 뜻의 ‘POLIZEI’ 라는 단어가 써있지 않으면 자칫 군인들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까운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급기야 무장한 경찰들이 출동했다.

한편, 프랑크푸르트 시내 구석구석에서는 저마다의 작은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축구팬들이 그저 보는 월드컵으로 만족할 리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월드컵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길거리 풋살(Futsal)이다. 공과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자리가 순식간에 축구 경기장으로 변한다. 여기에 지켜보는 이들까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면 제법 근사한 축구 경기의 구색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11~13세, 14~16세로 나누어 정식으로 리그전 형식의 경기를 치르던 여자 선수들 이었다. 나이에 비해 단단한 체격을 가진 그들의 경기는 거친 몸싸움과 강한 슈팅,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의 빠른 공수전환이 이루어져서 지나가는 이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여학생들이니까 얌전한 축구를 할 것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경기에 집중하는 가운데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탁 트인 공터에서 경사가 진 비탈길까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한낮부터 늦은 밤까지 경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날마다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침에 간단히 식사를 한 후 호텔에서 나와보면 거리에 유난히 특정 국가의 응원복을 입고 대형 국기로 몸을 치장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면 그 날은 그들 나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일 경기가 있는 나라의 응원단들은 그렇게 하루 종일 도시 전역을 당당하게 활보하곤 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따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환호하던 호주 응원단부터 한국 대 토고 경기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질문에 ‘너희는 2002년에 심판을 매수했잖아’ 라며 내 질문에는 상관없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탈리아 청년까지 사람들은 축구로 인해 모였다가 경기가 끝나면 다시 축구를 이야기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밤새도록 프랑크푸르트는 승리를 기뻐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토고와의 조별 예선 첫 경기가 있기 하루 전날, 한국 대표팀이 독일 현지의 베이스캠프인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고, 나는 대표팀이 도착하기로 예정된 호텔 앞을 찾아온 독일 어린이들에게 무작정 말을 건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 대표팀이 숙소로 정한 호텔은 내가 이미 3일간 묶고 있었던 호텔과 같은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시아에서 온 한국팀을 보겠다고 찾아온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들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독일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독일 대표팀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것이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현재 독일 대표팀의 중추인 발락을 비롯해서 골키퍼인 레흐만과 칸 선수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오히려 포돌스키나 슈바인스타이거와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아 그들이 대표팀의 주축이 될 앞으로의 월드컵을 더욱 기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대표팀을 태운 버스가 호텔에 도착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버스에서 내렸지만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첫 경기를 앞두고 다소 긴장이 되었던지 표정이 굳어있었고, FC서울의 국가대표 트리오인 김동진, 박주영, 백지훈 선수의 눈빛에서는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이렇게 타국에서 우리 선수들을 만나게 되다니, 선수들과의 접촉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 현지 경찰들의 통제로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반가운 마음을 쉽게 감출 수는 없었다.



몇 번의 이야기가 오가면서 나는 이 아이들과 금새 친해졌고, 아이들은 나에게 오늘 방과후에 학교에서 자신들의 축구 시합이 있다고 귀뜸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을 따라 근처에 위치한 그들의 학교를 찾았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그 곳까지 찾아간 수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아이들의 축구경기를 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선생님이 학교 수업의 일환인 아이들의 축구경기를 참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교장선생님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며 정중한 양해를 구해왔기 때문이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독일사람에게 예외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제 독일의 꼬마 축구팬들과는 헤어질 시간이다.

이튿날, 드디어 토고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어제부터 한국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부쩍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경기장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순식간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지하철에서 빠져 나온 붉은 물결은 그대로 경기가 있을 분데스리가 프랑크프루트 팀의 홈구장인 발트슈타디온(Waldsstadion) 까지 이어진다.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보니 국내에서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치르는 날의 상암벌을 연상시킬 만큼 한국 사람들이 이미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 날 경기는 모두가 잘 알고있듯이 한국 팀의 2대 1 역전승. 한국축구 사상 월드컵 원정 첫 승을 거둔 의미있는 경기였다. 전반전에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이 경기에서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후반전 들어 체력이 급격 떨어진 토고를 끊임없이 몰아붙인 한국팀은 승자가 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두 번의 경고를 받아 퇴장을 당한 탓에 교체출전조차 할 수 없었던 김동진 선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박주영, 백지훈 선수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에 와서 다 지나고 보면 독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경기를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구나 싶다. 비록 잠시 머무르기는 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내는 동안 축구라는 언어가 있어 의사소통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서로 익숙치 않은 영어로 축구이야기를 하다가 잘 통하지 않을 때는 그 나라의 대표적인 축구선수의 이름을 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올려주면 이내 상대방도 낯선 한국청년에 대한 경계를 풀고 친구가 되곤 했다.

글/사진=김광식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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