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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9월호]스타와 일촌맺기④-김치곤 편

2005-09-01



웃는 모습이 참 편안하다. 말을 잘 못한다며 쑥스러워 하는 모습 역시 귀엽다. "인터뷰합시다"라며 기자가 녹음기를 들이대면 어색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양이다. 김치곤 선수에게 인터뷰는 조금 부담스러운가 보다. 아무래도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기질이 여기서 발휘되는 듯 하다. 하지만 금새 자신의 축구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는 이 스물 세 살 청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오른다. 이미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린 '축구'. 그라운드 위에서 공을 찰 때 그는 행복하다.

여름의 끝자락이 지나가는 길목,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공과 함께 푸른 잔디를 내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그 중 놓칠 수 없는 얼굴, 김치곤 선수를 GS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나보았다.

나도 한 때는 공격수였는데..
부산 동래고를 졸업한 김치곤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유지하던 센터 포워드에서 수비수로 전향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또래에 워낙 특출난 공격수들이 많았어요. 운동장을 떠나지 않으려고 결국 밀리듯 수비수로 내려왔죠.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정말 특별하지 않다면 수비가 훨씬 좋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듯 하지만 결코 주눅드는 모습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데뷔해 벌써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미 그는 공격수 김치곤이 아닌 수비수 김치곤으로 완벽하게 변모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공격에 자그마한 미련은 있나보다. "감독님이 공격수 시켜주시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라며 히죽 웃어 보인다.

FC서울 No. 17 DF 김치곤 "이제 우승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8월 24일 개막한 후기리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기리그까지의 팀 최대 약점이었던 수비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팀훈련과 연습경기를 통해 수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 전지훈련을 계기로 주장 이민성 선수를 위시한 수비 라인이 많은 대화를 통해 조직력을 극대화시키고 훨씬 안정감을 찾게되었다고 한다. "이제 우승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후기리그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라 말하는 그에게서 당찬 포부가 느껴진다.
수비수로서 가장 막기 힘든 공격의 형태를 묻자 대번에 성남의 김도훈 선수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어려워요. 보통 공격수들은 우선 서서 공을 받고 그 다음에 움직이는데 김도훈 선수 같은 경우에는 계속 움직이고 스스로 공간을 창출하면서 공을 받으니까 마크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죠. 정말 잘 막아보려고 연구를 많이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가봐요."



4년째 숙소생활, "1층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부산에서 올라와 4년째 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 김치곤 선수이지만 이제는 내 집같이 편한 눈치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숙소에서 1층에 살고 있는 그는 1층 최고참이다. 룸메이트는 댄디보이 한동원 선수. 함께 4년 동안 지내다보니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살가운 친동생이나 진배없다. "보통 다른 사람이랑 자면 불편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동원이랑은 전혀 그런 게 없어요. 뭐 동원이가 청소도 안하고 말도 잘 안 듣지만 이제는 동원이가 없으면 허전하다니까요." 미니홈피에 종종 올라오는 한동원 선수와의 야릇한(?) 사진의 정체를 묻자 그게 생활이란다. 그때 옆에 있던 동원 선수의 한마디. "형이 밤마다 절 막 괴롭혀요!"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이다보니 자주 어울리는 무리가 있기 마련. 모두 친 형, 동생처럼 지내지만 그 중에서도 이정열, 곽태휘, 정조국, 백지훈 선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특히 이정열, 곽태휘 선수와는 함께 수비라인에 있기 때문에 더욱 나눌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경기 끝나고 나서도 꼭 우리 다섯 명이 그날 경기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요. 서로 플레이도 지적해주고, 속 깊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죠. 확실히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경기 중에서도 잘 통하는 편이고요."
보통 숙소에서 컴퓨터나 TV를 보거나 백지훈, 정조국 선수와 당구도 종종 치러 다닌단다. 누가 제일 잘 치느냐고 물으니 "제가 제일 잘 쳐요"라 대답해 준다. 그리고 쿡쿡 웃으며 덧붙인다. "지훈이가 매번 꼴찌인데요, 미안해서 가끔씩 져줘요."

주전으로 확실히 뛸 수 있을 때 대표팀 가고 싶어

청소년 대표부터 올림픽, A대표팀까지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김치곤 선수. 하지만 요 근래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때는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전이 마지막이었다. 대표팀이 그립지 않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은 K리그에서 자리를 잘 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정말 열심히 해서 확실히 주전으로 뛸 수 있을 때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런 그의 대답에 조심스럽게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 합류하고 싶은 지 물었다. "당장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후기리그에 최선을 다해서 내년 독일 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죠. 하지만 욕심 내지 않으려고요. 지금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야할 때니까요."
최선을 다 하는 길이 최고가 되는 길이라 믿는 김치곤 선수. 지난 시절,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에 느지막이 합류했던 때를 회상한다. "운이 좋았죠, 그 때는. 하지만 정말 좋은 모습 보여드린다면 자연스럽게 다시 불러주실 거라 생각해요."

방황하던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눈물

"중학교 때, 일주일 간 가출을 했었어요. 학교도 가지 않고 공사판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그랬어요. 도망가다가 부산 역 앞에서 잡혀 아버지한테 엄청 맞기도 했죠. 그 땐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운동이 힘들고 그러니까 객기가 났던 모양이에요."
그 시절 그는 보았다. 마음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의 뒤에서 흘리시는 아버지의 눈물을. 그 뒤로는 축구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어깨를 펴고 당당히 살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요즘도 경기 있는 날은 부산에서 매번 올라오세요. 가까이에서 아들 얼굴 보시지도 못하고 경기 보신 후에 전화 통화만 하는 게 다예요. 옆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죠. 부모님, 가장 큰 버팀목일 수밖에 없잖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라고 수 없이 되뇌는 김치곤 선수의 진심이 말이다.



인간 김치곤을 말한다

김치곤의 인생 모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바로 부지런함과 예의바름. 아침마다 숙소 뒤의 아차산을 오르곤 한다는 그는 대단한 부지런쟁이다. 함께 방을 쓰는 한동원 선수도 당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거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의'라는 덕목이다. "제가 (박)용호형을 정말 좋아해요.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 중 용호형만큼 인간적이고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윗사람을 모시는 거나 아랫사람을 챙기는 거나 모두 본받을 만하거든요. 용호형 보면서 생각 많이 해요. 아, 사람이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요."

요즘 그에게는 큰 소망이 하나 있다. 바로 좋은 인연을 만나 예쁜 사랑을 하는 것. "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거든요. 예의바르고 부지런한, 정말 평범한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어디 좋은 분 안 계신가요?" 토로하듯 말을 쏟아내는 김치곤 선수. 그는 요즘 외롭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김치곤 선수는 항상 그라운드에 서 있는, 성실히 임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크게 튀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그게 수비수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라며 씩 웃어 보인다. 올해의 목표는 팀이 꼭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우승을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것과 후기리그에서 골도 터뜨리고 싶다는 것이다. "맨유(Manchester United)의 퍼디낸드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수비를 빈틈없이 하면서도 가끔 치고 올라가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그런 선수요. 참, 그 레게 머리 꼭 해 볼 거예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축구의 본고장인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부럽지는 않을까. 그러자 예상외의 당찬 대답이 돌아온다. "나중에 더 잘하면 되죠. 내가 어디 있던 간에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의외다. 부럽긴 하죠, 라며 운을 뗄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 답해주는 김치곤 선수가 멋있었다.

마지막으로 항상 자신을 지켜봐 주는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경기장, 훈련장까지 와서 봐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희 FC서울이 플레이오프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요,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오현정 FC서울 명예기자
사진: 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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