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상, 터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로2000 8강, 한일월드컵 3위, 명문구단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살아있는 ‘명장’의 향기, 바로 FC서울의 신임 감독인 세뇰 귀네슈의 프로필이다.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감독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이다.
명장 귀네슈는 지금 무엇을 구상하고 있으며, 2007년 시즌에 대해 어떠한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을까? 시즌 개막을 준비하며 FC서울 웹진에서 직접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동계훈련, 이미 준비는 상당하다
강릉 전지훈련 때부터 귀네슈 감독이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체력. 일주일에 두 차례씩 펼쳐지는 K리그 일정이 그다지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을 가지고 있다. 2~3명을 제외하고는 이미 준비완료”라고 밝혔다. 체력 측정을 위한 고가의 장비를 구입한 것도, 이 같은 준비에 한 몫을 했다는 평이다.
거기에 덧붙여 “안탈리아에서 가진 9번의 연습경기 중 초반 2~3경기는 체력적인 문제 등으로 아쉬웠지만 이후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며 "많은 선수들이 내 뜻을 알고 있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이 또한 강조하는 부분은 ‘생각하는 패스’다. 이미 언론에서 수차례 언급되었지만, 귀네슈 감독은 의미 없는 롱패스와 백패스를 한국 축구의 안 좋은 습관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공격축구는 수비와 중간 라인에서 이뤄지는 정확한 패스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그는, 자체 연습 경기 중에는 잘못된 패스가 나오면 즉각 경기를 중단시키고 다시 차라고 할 정도다.
그는 “터키 전지훈련 중 처음 2~3 경기는 이런 습관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경기 후반전부터 우리 팀은 달라졌다. 이것이 터키 전훈 9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다”라고 평가했다. 실제 시즌에서도 목표가 명확한 ‘짜임새 있는 패스’가 상대의 밀착마크를 어떻게 뚫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우승, 그 이상을 꿈꾼다
FC서울의 포토데이가 있던 지난 22일.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기자들의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감독이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출발한 뒤, 남은 기자들이 웃으면서 말을 나눈다. “정말로 명장이군!”
귀네슈를 만난 기자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귀네슈에게 “명장답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확실한 주관 때문이다. 그는 절대로 목표 순위에 대한 질문에 섣부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팀은 80% 정도 완성되었다”는 식의 답변을 한다. 이런 답변 뒤에는 더 큰 목표가 숨어져 있다.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FC 서울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서울 시민이 1200만이라고 들었다. 서울시민 모두, 아니 한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FC 서울을 만들겠다.” 이런 까닭에 그는 ‘빠르고 생각하는 패스’, ‘공격라인과 수비라인의 간격 밀착’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이다. 그는 “FC 서울의 경기를 매번 축제 분위기로 만들겠다.”며 언젠가 “서울의 상징이 FC 서울이 되길 희망한다”라며 우승보다 더 큰 포부를 밝힌다.
인터뷰 중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를 생각하면 K리그 우승이 중요하다”고 언뜻 야심을 표현한 귀네슈. FC 서울에 대한 그의 플랜은 K리그 우승을 넘어 훨씬 큰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 영화 카피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앞으로 귀네슈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 문화에도 적응 완료
“좋아하는 차는 유자차와 인삼차에요.”
귀네슈 감독에게 ‘시즌 준비’를 앞둔 난제는 또 하나 있다. 바로 타지인 한국에 적응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에 귀네슈 감독은 좋아하는 차를 이야기하며 재치 있게 이미 적응에는 문제가 없음을 일러준다.
“사실 한국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문화가 다르고, 도시도 다르고, 특히 혼자 살고 있다.” 그래도 애정이 있었고,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과감히 FC 서울행을 택했다는 귀네슈 감독은 이미 서울 시민이나 다름없다. 서울은 한국에서 중요한 도시이지만,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공항으로 입국할 때마다 FC 서울 팬들의 환호에 감사를 느낀다.
“사실 터키에서는 공항에 환영하는 팬들이 수천 명씩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축구가 그 만큼의 인기스포츠는 아니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서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경기장을 축제의 장으로
귀네슈 감독이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경기장에 와 달라’는 흔한 대답을 기대한 ‘우문’에, 생각치도 못한 명장다운 ‘현답’이 나온다. “정말 재미있는 축구를 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한다. 공격축구로 축제를 만들겠다.”
그가 경기의 ‘재미’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경기가 재미있으면 관중이 많이 온다. 그런데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오면서 관중석을 보게 된다. 결국 재미있는 경기로 팬들이 모이면 선수들의 힘이 극대화 될 수 있다.” 성적보다는 재미에 집중하는 것이 성적도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귀네슈 감독은 선수들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체력 측정 장비를 제외하고 그가 장만한 유일한 장비가 ‘족구 네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선수들도 좋아하고 스스로도 족구를 하는 지인이 있어 좋아한다”고 밝힌 귀네슈 감독. 선수들의 여가까지 ‘즐거움’과 ‘화합’을 고려하는 명장의 꼼꼼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축구는 FC 서울 모두가 함께 하는 것
끝으로 귀네슈 감독의 인터뷰 행간에 숨어있는 이야기 하나. 귀네슈 감독은 특정 선수에 대한 질문을 항상 웃으면서 피해간다. 그가 가진 팀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스트 11은 항상 바뀐다. K리그의 빡빡한 일정은 10여명으로 소화하기 힘들다. 적어도 20명 이상이 항상 투입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는 스타에 의존하는 팀보다는 선수 모두가 준비된 팀을 원한다.
터키에서 9차례 실전평가를 하면서, 전후반마다 선수들을 다른 포메이션으로 바꾸어가며 기용했다는 그는 “베스트 일레븐은 매 경기 당일 1시간 전 정해지는 출전명단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어느 선수가 뛰더라도 FC 서울만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귀네슈 감독. 올 시즌 그가 보여줄 축제의 축구에 FC 서울 팬들 뿐 아니라 모든 이의 초점이 모였다. 그가 연주할 다양한 선수구성은 우리가 개막전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다.
사람이란 원래 지나간 영광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 한 번 곱씹고, 그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곤 한다. 귀네슈 감독이 축구 인생을 시작한 이래 떠나지 않았던 모국 터키에서는 ‘축구보다 재밌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문화생활의 시작과 끝이 축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명한 그는 알고 있다. 한국은 터키와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겠다는 것까지. 귀네슈 감독에게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FC 서울의 팬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감독이 우리에게 약속해준 ‘축제와 같은 축구경기’에 우리는 그에 대한 넘치는 신뢰와 믿음으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
귀네슈, 알레!
글= 오현석, 오혀정 FC 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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