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K리그 3라운드 전북과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궂은 날씨 속에서도 3만 8641명이라는 올 시즌 최고 관중 수를 기록했다.
김용대, 최효진, 현영민, 박용호, 이정열, 에스테베즈, 아디, 하대성, 한태유, 데얀, 이승렬 등 베스트일레븐은 여기 있고,
조수혁, 김진규, 김치우, 김한윤, 고요한, 어경준, 정조국도 있는데 방승환이 안 보인다. 그렇다. 방승환은 지난 강원전에서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해 전북전에는 뛸 수 없었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
그라운드에서 보이지 않았던 방승환은 스카이박스 팬사인회 현장에서 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그라운드 밖에서 팬들을 위한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게 서울의 룰이다. 서울 홈에서의 첫 경기를 다음으로 미뤄야했지만 방승환에게 이 사인회는 서울에서 가지는 첫 번째 사인회인 셈이다.
지난 2경기를 지켜 본 FC서울팬들은 방승환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것은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서울에 와서 느끼는 것들이 궁금했다. 방승환의 이름을 환호하는 서울팬들이 목소리는 들었는지, 서울 유니폼을 입고 뛰는 기분은 어떠한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런 방승환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사인회를 준비하고 있는 방승환에게 식사 했냐며 이야기를 건네자 ‘오전에 훈련하고 점심 먹고 왔다’며 대답한다.
이번 매치데이 매거진에 방승환이 한 컷 등장한다. 갑자기 그의 반응이 궁금해 매거진을 방승환에게 건네 주었다. 위아래 일체형 유니폼을 입고 있는 카툰 속의 방승환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웃음을 꾹 참고 진지한 표정으로 ‘털복숭이 카툰’ 코너에 등장한 소감을 물었다. 카툰을 찬찬히 읽어보던 방승환은 ‘저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가 봐요. 일체형 유니폼을 주시면 입을게요’라며 알듯 말듯 한 미소로 대답한다. 지금 개그한 거 같다. 적당히 진지해 보이고 적당히 재밌어하는 표정을 보니 방승환은 장난끼가 많은 사람이란 느낌이 왔다.
‘강원전에서는 열심히 뛰는 모습 좋았다’라며 치켜 올려주자 ‘그렇게 뛰지 않으면 저에게 기회가 오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선수다.
무심코 나이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방승환 왈 ‘저 나이 그렇게 안 많아요.’라고 말하는데 내 귀엔 ‘저 생긴 것보다 어려요’로 들렸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저 무서운 사람 아니얘요’라고 말했던 사람이 방승환이었지? 그렇다면 본인이 무섭게 보인다는 것을 안다는 얘긴데 이것도 같은 맥락인가?
여하튼 방승환은 83년생으로 장가보다는 군대를 가야할 나이다. 자연스레 군대 얘기가 나오자 ‘군대문제는 해결됐어요. 저 군대 안가요.’ ‘엉?’ 방승환은 군대 가지 않아도 국방부에서 안 잡아 간단다. 이유를 물으니 부상을 당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덕분에 군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인생 새옹지마란 말이 맞는 거 같다.
짧은 시간 긴 여운의 대화에서 방승환에 대한 ‘호감’은 ‘친근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2~3개월 지켜봤던 방승환은 항상 수줍고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새색시처럼 수줍다는 의미로 ‘방언니’라 불렀는데, 지금 앞에 서있는 이 사람은 표정은 ‘방언니’인데 말하는 솜씨는 방승환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주 당당하다. 세상 풍파를 겪은 인생의 냄새가 난다. 누구라도 그와 몇 마디 나누다보면 참 재밌는 선수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경기시작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이 남았음에도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인파가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벌써부터 방승환을 마킹한 유니폼을 들어 보이며 그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2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가 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선이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최고의 순간은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온 방승환은 기존과 다른 색깔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서울팬들은 올해 그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축구를 즐겨도 좋을 것이다.
/글, 사진 = 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