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돌아올 새 시즌에 대한 설렘 그리고 적막만이 어울릴 것 같은 11월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그런데 지난 28일 그곳에 새로운 누군가를 맞이할 기대감이 만들어낸 설렘 그리고 경쾌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가득했다. DVD촬영이 힘들 법도 한데, FC서울의 선수라는 사실이 실감난 탓인지 마냥 즐겁게 촬영에 임했던 조수혁, 문기한, 이상우, 이승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설렘과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뤘던 그날. 그곳에서 셔터소리만큼이나 경쾌했던 그들을 만났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해요"라는 질문에 으레 그렇듯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세 선수, 서로 눈치만 본다. 잠깐의 적막이 깨지길 바라고 있던 찰나 수비수 이상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씩씩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긴장을 많이 했는지 골키퍼 조수혁에게 먼저 대답하라는 압박이 다였고, 결국 조수혁의 자기소개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건국대를 다니다 왔어요. 이번에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표로 나갔었고, FC서울에 막내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골키퍼 조수혁입니다." 살짝 보이는 덧니 때문인지 유난히 앳돼 보이던 조수혁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곧이어 오른편에 앉아 있던 문기한이 입을 열었다. "동북 고등학교 출신이고요, 미드필더 문기한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쑥스러운 듯 짤막한 소개를 끝낸 FC서울의 새로운 막내 문기한에 이어 대답이 생각이 났는지 이상우가 바로 말을 이었다. "홍익대에서 선수생활 했고, 포지션은 수비고 혈액형은 O형이고 성격은 ‘와일드’ 합니다." 평범하게 자신을 소개한 두 선수와 달리 이상우는 축구선수 이상우가 아닌 인간 이상우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명예기자들의 의도에 부응했다. 이어서 공격수로 FC서울에 새롭게 온 이승열은 “안녕하세요. 이승열입니다. FC서울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며 역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사실 이런 것이 궁금했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인간’ 이상우, 조수혁, 문기한, 이승열에 대해 알고 싶었다. 축구선수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소개하기엔 아직 만들어나갈 수식어가 너무나 많은 그들이기에, 그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판단 에서였다. 물론 이상우 선수를 제외하고는 그저 평범한 소개로 끝을 맺었지만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직 순수 합니다’라는 대답은 들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위안하며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축구는 언제 어떻게 하다 시작했어요?"라는 첫 질문. 지금도 188cm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조수혁은 아니나 다를까 그 ‘키’ 때문이었단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컸어요. 초등학교 4학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축구부 감독 선생님이 축구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 오셨어요. 저의 재능을 알아봐 주신 감독님께 감사하죠.” 문기한과 이상우, 이승열은 축구가 좋아 직접 찾아갔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때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갔어요.(기한)”, “저는 축구가 좋아서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직접 제 발로 찾아 갔어요(상우).” 축구 얘기가 나오자 어쩜 이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과묵함을 유지하는 어린 선수들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과 비교하면 천국이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세 선수들, 축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과 축구 사이의 공통점 한 가지, 인연이라는 끈으로 애초부터 묶여져 있었다는 것 아닐까? 그 인연이 아무쪼록 FC서울에서 더욱 빛나길 바라며 이어진 다음질문은 바로 첫 느낌에 관한 것.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프로입단, 그 시작을 FC 서울의 선수로 만난 이 세 명의 선수들, FC 서울 입단이 결정 된 순간, 이들의 머릿속에 담긴 그 ‘첫 느낌’의 정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조수혁은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는지 감상에 젓은 듯한 표정으로 “소름 돋았어요”라는 짧지만 강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는 “평소에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해서 꼭 FC서울 유니폼을 입고 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기뻤어요”라며 추가설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벌써부터 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조수혁을 보며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이, 유난히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막내 문기한. 아니나 다를까 폭탄 발언으로 바통을 이어 받았다.
“나도 이제 밥줄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꽤 여러 명의 선수와 인터뷰를 해왔지만 이런 대답은 처음 들어봤다. 당황스러워 그저 웃고만 있는 명예기자들에게 문기한은 참 기특하고, 또 의젓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축구밖에 모르니까, 축구만 해왔으니까, 축구밖에 할 게 없으니까, 그리고 축구만 할 거니까.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의 입에서, 이정도의 대답이 나온다면, 문기한의 열정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이어 기쁨을 감추지 않는 모습으로 이상우가 말을 이었다. “서울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FC서울 경기를 많이 보러 왔었어요. 경기력과 같은 내적인 면도 그렇고, 마케팅과 같은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FC서울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좋은 구단에 들어오게 돼서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벌써부터 넓은 시야로 축구를 바라보고 있는 이상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렇게 넓은 시선으로 축구를 본다면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발전가능성 하나만큼은 충분할 듯하다. 솔직히 멀리 내다보는 이상우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승열도 남다른 자신의 느낌에 대해 밝혔다. 이날 이후 일정이 있어 아쉽게 인터뷰를 길지 하지 못했던 이승열은 “FC서울에 온 느낌을 설명한다면 그 자체가 저에게는 꿈이었습니다. 그 동안 경기장에서만 봤던 선배들과 함께하니 꿈만 같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됩니다”라며 꿈이 이뤄졌음을 밝혔다.
모두 다른 대답이었지만, 최고의 대답을 들려준 우리 선수들. 그럼 이제 내 팀이 된, FC 서울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 들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부터 훈련에 참가했다는 선수들은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아직 없어요. 긴장을 많이 했는데 훈련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좋았어요” 라며 입을 모았다. K리그 14개 구단은 감독과 선수, 프런트와 팬들이 함께 만드는 그 구단만의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 입을 모아 구단 분위기가 맘에 든다고 말해주니 이것만큼 다행인 것이 또 있을까? 첫 시작부터 힘들다면 적응, 경쟁, 이라는 단어들이 무거운 짐밖에는 되지 못 했을 텐데,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냥 좋고 그래서 적응도 자신 있다 말하는 선수들을 보니 그들 속에 꽉 차 있는 잠재력을 금방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한없이 반가웠다.
유독 친분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 조수혁과 문기한. “제가 동북고등학교 출신이거든요. 윤홍창, 심우연, 이상협 등 선배들이 많아요.(문기한)” 이어서 조수혁은 “이청용, 송진형, 김동석 선수와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때 같이 뛰면서 친분을 쌓았어요. 저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은 아니래요.(웃음)”라며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이 있어 팀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데, 어린 선수들에게도 선발 출전 기회가 활짝 열려있는 FC 서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결국 또래 친구들도 경쟁상대일 텐데 먼저 프로에 데뷔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들을 보면 각오가 조금 남다르지 않을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죽기 살기로 뛰는 것 밖에는...(수혁)”, “일단 프로로서 자기관리에 충실히 하면서 열심히 하면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기한)”,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요. 하나씩 하나씩 배워서 발전해 나가야겠죠.(상우)”, "지금은 이제 시작이니까 천천히 다른 선배들처럼 올라서고 싶어요(승열)“ 조금 전 까지 장난치던 그 선수들이 맞는 건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을 터. 냉혹한 프로 무대의 벽을 넘기 위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그들의 진심어린 각오는 그들의 가능성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그리고 멀리 보는 목표가 무엇이냐고... “게임 뛰는 것은 욕심 내지 않아요. 다만 배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수비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율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요. 골기퍼 하면 ‘조수혁’이라는 이름 떠올릴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할 테니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수혁)”, “조급하게 생각 안 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거죠. 미리 예측하고 찔러주는 패스는 자신 있으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제 장점이 빛날 날이 오겠죠. 열심히 운동해서 실력으로 응원에 보답하겠습니다(기한)”, “우선은 단기적으로 적응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마음이 편해야 제 실력 그 이상이 발휘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양발 크로스에 자신도 있고, 욕심도 많아요. 그게 팀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적응 잘 하고 싶어요.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몸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상우)”, “언제나 이승열이 FC서울의 필요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거에요. 미래의 제 모습을 그리며 골을 넣어 팬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승열)”.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말, 시작을 앞둔 이들에겐 이것이 정답이 아닐까? 어차피 멀리보고 가야 하는 길, 욕심이 눈을 가려 앞에 있는 돌부리를 보지 못한다면, 걸려 넘어지고, 지치기 십상이다. 한 곳만을 바라보고 일찍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해온 그들이기에, 그래서 지금 자신들에게 맞는 정답이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준비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FC 서울의 사람으로서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그 것 뿐이다.
포기하지 말자고(수혁), 잘 적응해 팀에 보탬이 되자고(기한),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다치지 말자고(상우), 우리 정말 강하게 이겨내자고(승열). 서로에게 당부한 그들. 어느새 그들은 입단 동기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고 똘똘 뭉친 그들은 또 어느새 FC서울이라는 이름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모습의 길을 걷게 될지 알려 노력해도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을 뿐. 다만, ‘프로선수’로서, 자신이 현재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지금처럼만 ‘동기’라는 이름으로 서로 끌어주고, 밀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지금처럼만 걸어간다면,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없이 거칠다는 프로무대의 잔디를 당당히 디디며 ‘FC서울’의 또 한 명의 소중한 선수가 되어 있는 그들을 다시금 인터뷰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땐 그들을 조금 더 자랑스럽게 ‘우리 선수’라 칭할 것이고, 그들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팀 FC 서울’이라 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공희연, 백승경 FC서울 명예기자
/사진= FC서울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