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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11월호]스타와일촌맺기⑥-김성재선수

2005-11-01



축구는 11명이 뛰는 경기이다. 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화려한’, 또는 ‘유명한’ 선수만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골을 넣지 못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이런 선수가 있다.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땀을 흘리며 프로 통산 200경기 출전의 고지를 넘은 김성재 선수가 대표적이다. 'FC 서울의 살림꾼'이란 별명처럼 항상 팀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김성재 선수를 10월 21일 구리 GS 챔피언스 파크에서 만나보았다.


프로 통산 200경기 출장, 그 간의 기억들

프로 데뷔 7년간 200경기 출장. 짧지 않은 기간이요 또한 적지 않은 숫자임에 틀림없다. 말수 적기로 유명한 김성재 선수에게 그 간의 기억을 묻자 돌아온 첫 마디는 “아, 힘들었죠..”였다. 머리 속으로 지난 7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200경기라는 수를 세기보다는 그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스스로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이 시기를 거쳐가셨을 텐데 200경기 출장이라는 것이 정말 꾸준히 출전을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쯤 되니 정말 진정한 축구가 무엇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 더욱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200경기 출장의 기록을 남기게 된 23일 수원전, “제 아무리 분위기가 안 좋아도 절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각자 개개인의 준비는 언제라도 되어 있습니다. 호락호락 경기를 내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고 밝혔던 각오처럼 우리의 전사들은 수원 빅버드 경기장에서의 원정에서 경기 결과와 내용, 매너까지 완벽한 3-0 완승을 거두었다. 김성재 선수의 대기록을 한층 빛나게 해 준 감동적인 경기였다.



진정한 프로란

후기리그 첫 경기였던 광주전의 1승 이후 7경기 동안 승리를 일구어내지 못한 FC서울. 선수 생활을 하며 謙衙?경기를 힘들게 풀어갔던 때가 있을까 싶을 만큼 참 힘이 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팀에서 어느 정도 연배와 경륜이 있는 김성재 선수이다 보니 책임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우선 선수단 사이에 퍼져있는 자만심을 경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말 배가 부른 게 아닐까. 한국 축구라는 것이 실력은 모두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준비하고, 생각하는 정신력의 부재가 심각한 원인인 듯 합니다. 각성해야 할 일이죠.”

매 경기 평균 2만명 이상 운집해 있는 관중, 든든한 모(母)기업, 수준 높은 훈련장과 홈구장까지 모든 선수들이 바라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있는 현 FC 서울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정신력의 부재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에 형님으로서 아우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 역시 잊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팀의 많은 젊은 선수들이 경력보다 네임 밸류가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려운 순간에 봉착했을 때 선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스타의식이 아닌 팀을 사랑하고 서로 뭉쳐서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는 겁니다. 많이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마음부터 먼저 버려야죠.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때입니다. 물론 경기가 안 풀리는 원인이 젊은 선수들에게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마인드는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쓰게 웃으며 덧붙인다. "팀에 녹아 들지 못하고 내가 제일이란 생각을 하는 선수가 과연 프로일까요. 아닙니다. 프로라면 다른 무엇보다 제일 먼저 팬을 위해 축구를 해야 하고, 팀 안에서 함께 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프로이지요."



7년 간의 클럽 생활, 여한 없이 뛰고 싶어

프로 데뷔 이후 7년의 기간을 오직 한 클럽에서만 뛰었다는 것은 김성재 선수가 언제나 팀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단면이다. 사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1999년, 한양대에서 드래프트 2순위로 FC서울(전 안양LG)에 입단한 이후 2000년 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그의 왼팔에는 팀의 캡틴을 뜻하는 주장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사실 7년의 프로 생활 동안 주장 역할을 했던 2년이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2003, 2004 시즌에는 성적도 안 좋았고, 주장이라는 감투는 쓰고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제가 주장으로서 선생님들과 선수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유독 그 때에 부상이 많았어요. 주장의 책임을 갖고 경기에 잘 뛰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참 소홀한 부분이 없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중요했던 시점이었는데.."

아쉬운 듯 말 끝을 흐리는 김성재 선수.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부상에는 당할 장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선수에게 부상만한 악재는 없다. 이제 프로 7년 차에 접어드는 김성재 선수는 다른 무엇보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해서 부상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몸 관리를 잘 하면 부상 당할 상황에서도 재빨리 피할 수 있는 스피드도 나게 됩니다. 우선 몸이 안 좋으면 근육부터 말을 잘 안 들으니까요. 이걸 잘 알면서도 몸 관리를 하는 게 쉽지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선수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게으름입니다. 꾸준히 몸 관리를 하면서 부상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번 시즌에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에 큰 중점을 뒀습니다. 앞으로 남은 선수생활, 정말 여한 없이 뛰고 싶거든요.”

지성, 영표로 인해 높아진 팬들의 눈. 때로는 아쉬운 마음 들어..

어떤 K리그 구단의 홈페이지보다 훨씬 활발한 활동이 벌어지는 FC 서울 홈페이지의 팬 게시판. 게시판에 들른 적이 있는가 물으니 “자주 들어가 보는 편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많은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 팬들이 쓴 글을 읽을 것이라는 것이 김성재 선수의 생각.

“팬들이 보시는 게 어쩌면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말씀해 주시는 부분에서 선수들이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또 고쳐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경기에 이겼을 때야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칭찬의 글들을 기분 좋게 보지만 경기가 좋지 않았을 때 따끔하게 주시는 말씀들을 듣는 게 좀 힘든 거죠..”

게다가 요즘은 참으로 큰 난제(?)가 생겨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지성, 이영표 선수 때문이다. 보통 K리그가 벌어지는 일요일 하루 전 열리는 프리미어리그를 보고 오는 팬들의 눈이 쫓아가기 버겁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팬들 사이에서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평점제’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모든 걸 프리미어리그에 맞출 수는 없습니다. 축구 시장부터 환경, 입지까지 전체적인 부분에서 우리와 큰 격차가 있는 곳이 프리미어리그입니다. 그 안에서 선수들의 플레이 역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평점제요, 물론 한 경기를 끝내고 객관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독과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참 착하고 단순한 선수들이 많거든요. 작은 비판에도 상처를 잘 받곤 합니다. 이 부분을 우리 팬들께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모든 힘의 원동력, 따뜻한 가족

참 무뚝뚝해 보이는 김성재 선수의 가정생활은 어떨까? 슬며시 웃으며 화두를 던지자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저보고 가정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라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족. 6세, 5세인 딸 은지와 은비, 그리고 올해 두살 난 아들 태웅이까지 세 아이의 아빠인 그가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을 때는 바로 가족들에 대해 말할 때였다. 스물 넷, 비교적 이른 나이에 웨딩 마치를 올린 그는 결혼 후 바뀐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내 편’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져도, 무조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잖아요.”

경상남도 마산 출신인 김성재 선수. 경상도 사나이인 그가 프로포즈를 어떻게 했을까 궁금했다. “그냥 별 거 없이 ‘결혼하자’ 그랬어요. 오래도록 만난 사람이다 보니 특별하게 할 생각을 못 한 것 같아요.”
2000년, 팀이 우승하던 해에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평생을 약속했다. “그 때가 정말 행복했다 싶어요. 세상에 두려울 게 없었죠, 정말..” 이제는 꽤 커서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아이들은 경기 때마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을 주곤 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종종 당황스러운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뭘까?

“가끔 TV에서 대표팀 경기를 해 주잖아요. 그럴 때 애들이 말하는 거예요. ‘아빠, 축구 하는데 왜 아빠는 집에 있어?’라고요. 그러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저 아저씨들은 축구 정말 정말 잘 하는 아저씨들이야. 알았지?’라고 말 해주곤 하는데.. 참 축구 선수로서 가슴이 찢어지죠.”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를 말 해주면서 털털 웃어 보이는 김성재 선수. 이제 곧 세살이 될 아들 태웅이와 당장이라도 똑같은 옷을 차려 입고 함께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단다. “그런 거, 모든 아빠들의 소망 아닐까요?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멀어졌다. 하지만 아직 남은 리그 경기가 있고, FA컵이 있으며 무엇보다 다음, 그 다음 시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끝’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 김성재 선수의 생각이다.

“팬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그 누구보다도 팬들을 위한 축구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말이죠. 하지만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부상 없이, 팀에 전력을 쏟을 생각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서른 다섯 정도까지 뛰고 싶은데.. 욕심일까요?”

욕심이 아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남아있는 시즌을 위해, 그리고 돌아올 다음, 또 그 다음을 위해 팀과 함께 뛰면 되는 것이다. 진정한 프로는 팬을 위한 축구를 하며, 팀 안에서 함께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쾌하게 진행된 인터뷰. 전에는 사실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7경기째 무승가도를 달리는 선수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우리가 만든 겁니다. 받아들여야 할 사람도 우리 선수들이지요”라며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준 김성재 선수. 행복했다, 이런 선수를 사랑하며 성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믿음이 팀 전체로 나아가 팬들과 선수들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프로’와 ‘진정한 팬’이 이루어 낼 최상의 하모니가 아닐까. FC서울의 살림꾼 김성재 선수,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에 정말 부상 없이 팀과 끝까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글= 오현정 FC서울 명예기자
사진= FC서울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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