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여학생이 휴일에 집으로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한 가지 직업활동을 오래 하면서 그 직업의 특성에 의해 얻게 되는 병을 ‘직업병’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단어의 의미가 넓어져 ‘여보세요’를 ‘여보세요’라고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한 위 여학생의 일화에서처럼 직업에 의해 어떤 습관을 갖게 되었을 때, 그것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프로축구선수들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나이는 대체로 열 살 초반쯤. 열 살로 대충 어림잡아 계산해봐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십 년 이상 축구를 해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FC서울 선수들도 축구로 인한 직업병을 갖고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운전 중 정지선을 넘어선 자동차를 보고 “오프사이드!!”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FC서울 선수들의 직업병. 그들에게 직접 들어보자!
“얘들아, 형도 좀 끼워줄래?”, 직업병과 본능 사이 – 윤홍창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학교나 길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데,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춰 서게 된다.
아이들 발 끝에서 이리저리 튕겨지는 둥근 축구공에 먼저 마음이 동요되고, ‘패스! 패스!’ 다급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결국 내 발목을 붙잡는다. 아이들이 차는 공은 곧 내게 날아올 것만 같고, 패스하라는 외침은 나를 향한 것 같다. 이내 다리가 움찔움찔.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훈련하고 왔는데도 아이들 무리에 끼어 축구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축구선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정말 문제는 단지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는 것. 단순히 공을 주고 받는 간단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에도 그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공이 비록 배구공일지라도 말이다.
“오늘도 실패했어요!”, 나의 쇼핑 실패기 – 아디
직업이 운동선수이다 보니 편안한 옷을 자주 입지만, 가끔 기분 전환 겸 혹은 필요에 의해서 정장 같은 걸 사러 갈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 옷 가게를 한참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와 쇼핑백을 확인해보면 들어있는 건 온통 축구 관련 의류와 용품들뿐, 내가 원래 사려던 옷은 없다. 나도 모르게 또 축구 관련 매장만 돌아다니다 온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내와 함께 쇼핑을 가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본인의 옷을 고를 동안 나는 또 나도 모르게 축구와 관련된 옷들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늘은 정말 다른 옷이 필요해!’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서도 ‘오! 이거 좀 괜찮은데?’하고 보면 어김없이 또 축구와 관련된 옷. 가끔은 이런 내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즐겁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직업병을 넘어 축구와 단단히 사랑에 빠진 것 같아서 말이다.
“기분 전환하는 법 알려드릴까요?”, 동전 하나의 행복 – 김치곤
나는 심심하면 곧잘 동전을 가지고 놀곤 한다. 바닥에 놓고 돌리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동전을 가지고 놀다 보면, 내 손을 떠나 공중으로 날아오른 동전이 순간적으로 경기 시작 전에 진영을 정하기 위해 주심이 던지는 동전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잠시나마 내가 지금 경기 시작 직전의 그라운드 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경기 시작 직전의 묘한 긴장감을 나는 좋아한다. 특히나 홈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내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난 왠지 모르게 무기력하고 기분이 가라앉을 땐 일부러 동전을 던지며 경기 시작 직전의 그라운드를 떠올리기도 한다.
경기가 막 시작되려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 그 경기장 가득 울려 퍼지는 팬들의 함성…
내가 축구선수라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십 년 넘게 축구만 하며 지내온 선수들이 직업병을 가지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소위 ‘직업병’이라 일컫는 것들은 단순히 축구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생긴 것만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으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축구를 향한 열정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우리 FC서울 선수들! 그들이 그 강한 열정으로 만들어낼 승리의 날을 함께 기대해보자.
/허세정 FC서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