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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FC서울 소띠 선수들, 2009년은 그들의 해

2009-01-06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쏟아지는 ‘OO띠 유명인!’과 같은 식상한 기사들. ‘식상해!!’라고 외치면서도 매번 클릭하는 내 모습도 식상하다. 읽어봤자 별 내용도 없는데 습관처럼 올라오고 습관처럼 읽게 되는 기사. 식상하지만 막상 또 없으면 허전한 기사. 그래, 나도 오늘은 그런 기사를 좀 써볼 참이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명예기자 본인 역시 소띠다. 불타는 학구열을 가진 부모님 덕에 본의 아니게 쥐의 탈을 쓰고 학창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오늘은 쥐의 탈을 벗고, 소띠 선수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지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범한 꿈을 꾸던 소년, 축구화를 신다 - 1997년, 13세 소년의 꿈
1985년에 태어난 소띠들이 12년 후 또 다시 소의 해를 맞이한 1997년, 대한민국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처럼 극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외환위기로 IMF에 긴급지원을 요청하면서 온 국민이 빚을 갚겠다며 금 모으기에 나섰고, 아껴 쓰고 나눠 쓰는 것도 모자라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전국을 휩쓸었다. 텔레비전은 연일 시민들이 가지고 나온 금에 얽힌 사연과 그래도 우리의 미래는 밝으니 힘내자는 내용의 공익광고로 넘쳐났다. 97년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 당시 13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1997년’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IMF가 가장 먼저 생각날 만큼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97년 겨울, 그 때의 내 꿈은 공익광고에서처럼 황금빛 희망이 넘쳐나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심우연 - 처음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인데, 본격적으로 경기를 많이 뛰게 된 것은 6학년 때부터 입니다. 진학을 위해서 대회도 많이 나가고 축구선수라는 꿈을 위해 정말 바쁘게 보냈던 한 해였던 것 같네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어린 나이였지만 커서 꼭 프로 선수가 되고 싶었고, 국가대표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강재욱 - 제 꿈은 평범했어요. 그냥 남들처럼 직장에 들어가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97년에 처음 수비수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축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도 있고 사실 처음에는 다이어트 목적이 컸기 때문에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축구 지도자를 꿈꿀 정도로 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요.



김승용 - 97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 때네요. 그 당시에는 그냥 막연하게 ‘열심히 해서 프로 선수가 되어야지!’, ‘국가대표선수가 되어야지!’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그 땐 그게 막연한 꿈이었는데 지금 현실로 이루어졌잖아요. 그래서 그 때 생각이 많이 나요. 또 지금 우리 팀 코치로 계신 이영진 코치님이나 최용수 코치님이 그 당시 저에겐 우상이었거든요. 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렇게 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에요.

안태은 -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은 당찼어요. ‘프로 선수, 국가 대표선수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되어야겠다’,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사인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1997년 하면 또 생각나는 게, 그 때 같은 반 여자아이를 좋아했는데 제가 전학을 가여 하는 상황이어서 헤어지게 되었어요. 첫사랑을 두고 전학을 가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남네요.

소년, 이십대의 한가운데에서 꿈과 마주하다 - 2009년, 스물 그리고 다섯
12년 전 13세였던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하버드대에 진학할 줄 알았고, 22세면 결혼을 할 줄 알았으며 25세엔 키도 엄청 크고 매우 성숙해 보이는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하버드대는 구경도 못해봤고, 22세엔 결혼은 커녕 애인도 없었으며, 25세인 지금도 맨 얼굴로 나가면 성장기 꼬꼬마로 오해를 받고, 이른바 호빗원정대라 불리는 우리 학교의 평균 키 하락에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룬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매우 행복하고, 앞으로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 성장하고 있고, 나의 미래를 위해 이제껏 내가 움직여 온 것보다 더 크게 뛸 자신이 있다.

김승용 - 13살에 꿈꾸었던 25살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그 때 꾸었던 꿈보다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국가대표의 꿈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꿈도 이룰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죠. 20대 초반의 5년 중 2년을 군에서 보내서 솔직히 아쉬운 면도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다녀와야 할 군대고, 군대 가서도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남들보다 일찍 다녀와서 좋은 점도 있는 것 같고요. 대신 20대 초반을 군에서 보낸 만큼 남은 20대는 축구선수로서 더 화려하게 보내고 싶어요. 축구선수는 축구로 성공하는 게 꿈이고 목표니까요. 이제까지는 유망주, 기대주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앞으로는 ‘김승용’하면 ‘FC서울의 주축선수’, ‘훌륭한 선수’라는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심우연 - 20대 초반엔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어린 나이라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여러 사람들과 많이 어울렸어요.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좀 먹었으니까 이제까지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20대 후반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30대를 향해가는 시기잖아요. 일단 좀 더 많은 경기를 뛰는 것을 목표로 해서 매년 경기수를 늘려가면서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싶어요. 지금의 저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니까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의 가장 큰 목표는 정말 열심히 해서 내년에도 축구만 할 수 있는 해가 되도록 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또 바라는 게 있다면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어른이 된 소년, 꿈을 나누어주다 - 2021년, 서른일곱이 된 소년이 열세 살 소년에게

2009년에서 또 다시 12년이 지나면 2021년이다. 1985년에 태어난 소띠들이 또 다시 소의 해를 맞아 서른일곱이 되는 해다. 열세 살에 막연하게 스물다섯의 나를 상상했던 것처럼 또 막연하게 서른일곱의 나를 상상해본다. 결혼은 했을 테고, 늦게 결혼 할 생각이니까 아이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미취학인 상태일 테고, 11살이나 어린 내 동생은 매우 부럽게도 아직 대학생일 것이다. 외환위기를 뛰어넘어 대공황에 도전한다는 이 불경기에 운 좋게도 취업에 성공한다면 그 때쯤 나는 신입사원들을 앉혀놓고 내 취업 성공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있겠지. 어디서 뭘 하든 치열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재욱 - 37세쯤에는 아마 지도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훌륭한 축구 지도자가 되는 게 제 꿈이거든요.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땐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어느새 축구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하며 살고 싶어요. 97년에 태어난 소띠 축구꿈나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축구를 즐기라는 거예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축구도 그렇고 뭐든 즐겁게 해야 능률이 오르니까요.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안태은 - 37세쯤에는 저는 축구를 계속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가능한 한 선수생활을 오래 하고 싶거든요. 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운동장에서 뛰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지 않을까요? 띠 동갑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를 시작한 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분명히 좋은 기회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항상 노력하는 자세로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열세 살 축구 꿈나무였던 소년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꿈은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더 큰 꿈을 위해 다시 뛸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껏 달려온 것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뛸 것이고, 수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12년 후에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있을 그들을 기대해본다.


/허세정 FC서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