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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날아오르다! 골키퍼 김호준

2008-04-07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어린 막내였다. 세월이 계속 흘러간다 해도 김병지라는 걸출한 골키퍼가 그의 위에 올라서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기회 아닌 기회, 수면 아래에서 숨죽여 기다리고만 있던 그가 비행을 시작했다. 김호준, 이 스물다섯의 청년은 ‘아직은 시작’이라 말한다.

스마일 맨, 김호준

공과 함께일 때나 평상시, 참 많이도 웃는 그는 스마일 맨이다. 어릴 적 ‘웃으면 오래 산다’라는 말을 듣고부터 웃는 게 좋아졌다는 김호준. 그 큰 골대를 뒤에 두고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법도 하건만 요즘 정신력 집중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느라 흰 머리가 늘어난다며 역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에요. 입단하고 나름대로 힘들었던 시기도 제 천성이 저를 버티게 해준 것 같아요. 지금이야 1군 경기를 뛰고 있지만 제가 자라난 곳은 2군 무대잖아요. 잘 될 거야, 잘 하고 있어, 저 스스로 항상 되새겼어요. 필드에 가면 정말 후회 없이 죽을 힘을 다해 뛸 거라는 것도요.” 그리고 그는 찾아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시즌 전 일각에서의 우려를 뒤엎고 개막전 이후로는 국가대표팀 예비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 때 기분이 어땠을까?



“대표팀이요? 처음에 동생들이 저한테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데, 웬 장난인가 생각했어요. 그 때는 리그 한 경기를 뛰었을 뿐이었는데요 뭘... 그런데 인터넷을 보니 정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이게 뭔가, 얼떨떨했어요. 확정 명단에 오르기는 아직 이르다고 봐요. 아직 보여줄 게 너무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게임 계속 뛰는 것만으로도 요즘 정말 너무 재밌고, 흥분되고, 또 무엇보다 즐겁거든요.”



모든 코드는 ‘대화’로 통한다

막내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는 ‘대빵’이 돼 버렸다. 삼촌이라 부르는 김병지 선수가 요즘 함께 훈련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다. 밑으로 조수혁, 강재욱 2명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있는 중이다.

“저도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생각해보면 참 많이 서먹하고, 모든 게 어렵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한 마디라도 더 붙여주고, 제가 먼저 장난도 치고 그러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어요. 가르친다고 하기 보다는 항상 얘기를 많이 하면서 서로가 가진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어요. 이제는 완전 가족이죠.”

자신에게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험’은 야신 골키퍼 코치, 김병지를 통해 얻어나가고 있는 중이란다. “야신 코치님하고는 온 몸을 이용해서 대화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영어를 잘 하셔서, 몸으로 얘기하다 안 되면 통역인 (박)만춘이가 많이 도와주고요. 병지 삼촌도 그렇고 항상 벌어질 수 있는 실점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럴 땐 이렇게 하자, 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저나 후배들 모두 아직은 정말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보니까 이런 말씀들이 정말 귀하게 다가와요. 그런 분들과 함께 훈련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정말 큰 복이죠.”

가장 무서운 공격수는 데얀과 박주영

골키퍼로써 가장 막아내기 힘든 선수를 묻자 단번에 데얀과 박주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데얀은 볼 컨트롤이 좋고 결정력도 진짜 좋아요. (박)주영이도 슈팅이 워낙 좋다보니까 예측이 쉽지 않죠. 강하게 들어오는 슈팅보다는 교묘하게 찔러 넣는 공이 더 막기 힘든 법이거든요. 미니 게임을 하다보면 같은 팀이라 진짜 다행이다, 싶어요. (김)은중이 형도 정말 좋은 공격수인데 형이랑은 애증(?)의 관계로 맞물려 있어요.” 에, 이게 무슨 소리? 애증이란 단어에 퍼뜩 놀라 되물으니 쿡쿡 웃으며 얘기해준다.

“제가 형 슈팅을 막아내면 ‘어쭈, 니가 내 공을 막아?’이러는 거예요. 어쩌다가 제가 골을 먹으면 ‘거봐, 내가 너 뚫었잖아?’이러고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형은 꼭 막는다, 나는 골 넣는다, 만날 서로 그 소리 하는 거죠.”

미니게임 하면 빠지지 않을 선수는 바로 아디와 이청용. 골키퍼로써 아주 손색이 없는 선수들이란다. “가끔 재미있으려고 서로 포지션을 바꿔서 게임을 하거든요. 다들 준비하고 있으면, 아디는 아무 말 없이 저한테 와서 손을 내밀어요. 장갑 달라고요. 첨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골키퍼 장갑을 낀 아디가 공을 너무 잘 막아내는 거예요. 청용이는 페널티 킥을 잘 막고요.” 훈련 중에 가끔 필드 플레이어로 나선다는 그. 공차는 것도 꽤 잘할 자신 있단다. 공격수 김호준에 골키퍼 아디라, 언제 한 번 볼 수는 없을까요 감독님?



골키퍼여서 행복해요

‘운명’처럼 골키퍼를 시작했다는 김호준. 축구선수로써 ‘인생은 한 방이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얼굴이다. “그럼요. 주변에서도 자고 일어났는데 스타가 됐다고, 갑자기 붕 떠 버렸다고 하는 선수들 있잖아요. 거의 골을 넣고 유명해 진 것이어서 제가 조금 불리하긴 하네요. 하지만 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갈 겁니다. 그러면 꼭 한 방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골키퍼는 다른 필드 플레이어와는 달리 조금은 특수한 포지션. 팀의 최전방을 지켜내는 골문 지킴이로써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 아닌 멘탈, 정신이라고 수차례 강조한다.
“아시다시피 골키퍼는 뛰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인 소모는 크지 않아요. 대신 정신력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아무리 몸 상태가 좋아도 정신력이 흐트러져 있으면 아무런 소용없어요. 저도 몸보다는 정신이 피곤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앗, 집중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 덕에 흰 머리가 늘어난다고 하지 않았나? 반문하자 씨익 웃으며 돌아오는 대답이 미소를 만들어 낸다. “에이, 축구 생각하는 건 괜찮아요. 정말 제대로 들어온 슈팅을 막아내는 거, 그게 얼마나 기분 좋은 건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걸요? 골키퍼, 진짜 매력 있어요.”



진정한 공격축구는 제대로 된 수비

지난 시즌, 귀네슈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축구를 대변해 주었던 것은 높은 득점력이 아닌 ‘최소 실점(정규리그 26경기 16실점)’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골키퍼 김호준은 그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말한다. 진정한 공격축구의 바탕은 바로 제대로 된 수비라는 것.

“우리 포백수비는 정말 견고하고 믿음이 가요. 부상이나 경고 누적으로 선수가 바뀌어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어요. 항상 함께 훈련하고 호흡을 맞추니까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공격축구, 그건 한 골 먹더라도 두 골 넣어서 이기는 거거든요. 물론 저로써는 실점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골을 먹었다 하더라도 우리 공격수들이 더 많은 골을 넣어줄 거예요.”

거기에 경기 전체를 보는 눈을 길러 나가는 것은 보너스다. “가끔 형들 다쳐서 쓰러질 때 있잖아요, 그럼 꼭 제 자식이 아파서 쓰러지는 것 같아요. 누가 경고라도 한 장 받으면 그게 누적되지 않도록 서로 독려하고요. 축구는 11명이 하는 거니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프로 4년차, FC서울을 바라보는 눈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참 많았는데..”흐리는 말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의 84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군복무, 이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팀을 떠나갔다. 프로 인생의 첫 팀, FC서울. 그에게 팀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 팀이요? 좋죠. 너무 좋아요. 모든 사람에게 ‘처음’은 의미 있듯이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팀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면서 태극 마크를 달고, 세계무대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0여년이 지난 후에도 ‘FC서울 선수’였으면 한다는 거예요.”

현역 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그. 만약, 이라며 차선책을 묻자 이번엔 ‘FC서울 GK코치’란다.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지도자가 된 저를 꿈꾸고 있어요. 우리 팀이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는 산실이잖아요. 그게 참 좋아요. 당장 사용할 즉시 전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키워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하고 있어요. 제가 지도자가 된다면, 저 역시 선수 육성에 힘을 쏟고 싶어요. 아직 한참 먼 제가 봐도 청용이, 명진이 같은 선수들 실력이 쑥쑥 커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코칭 스태프들 눈엔 오죽할까요. 선수들 커 가는 것 보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고. “저 녀석 참 꾸준하구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구나. ‘김호준이기에’ 정말 듬직하다”라는 말을 듣는 선수, 또 한 인간이 되고 싶단다.

4월, 다가올 지옥의 레이스 앞에 선 김호준은 겸허하다. 비록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지라도 괜찮단다. 그저 언제라도, N석 우리 팬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서포터즈석을 등지고 함께 골대를 지킬 수만 있다면... 공은 둥글고, 축구는 언제나 예측 불허. 흘린 땀방울은 반드시 값어치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많은 것들을 기다린다. 당장은 아닐 지라도 그가 여태껏 쌓아온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당당히 증명해 줄 그 날을 바라본다. FC서울, 아니 대한민국의 NO.1 GK가 되어 든든히 우리의 골대를 지킬 김호준, 그 이름 석 자를.

글=오현정 FC서울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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