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홈 경기가 있는 날. 그것도 오후 8시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 과연 선수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지낼까? 그것이 궁금하다. 아니 궁금하다 못해 정말 알고 싶다. 그래서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말하는 홈 경기날 자신의 하루 일기를 들여다 봤다.
AM 8:00
내 이름은 이청용. 나는 FC서울의 선수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린다. 아. 나의 휴대폰 모닝콜이 울린다. 깊은 잠을 자고 있었지만, 일어나는 게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어제 호텔에 들어와 일찌감치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먼저 하는 것은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후에 경기를 잘할 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식당으로 향한다. 다른 선수들 역시 상쾌한 모습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다들 어젯밤에 푹 잤나 보다. 아침을 먹은 후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시간이 조금 남는데… 뭘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침대에 파고든다. 굳이 졸려서라기 보다는 오늘 늦게 있을 경기를 위해 몸을 푹 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음냐. 다시 잠이 든다.
AM 11:00
산책을 갈 시간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이 시간에는 모든 선수들이 모여 다같이 산책을 한다. 오전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정신도 맑게 해주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20분 가량 산책을 하다 보면 잠시라도 경기에 대한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난 이 산책시간이 참 좋다. 선수들의 표정은 밝다. 좋아. 오늘 경기는 잘 될 것 같다!
PM 12:00
산책을 마친 후 잠시 쉬었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식당으로 내려간다. 확실히 아침 식사 때 보다는 조금 더 활발한 분위기다. 한편으로는 경기가 조금씩 다가온다는 긴장감이 돌기도 한다. 그래도 다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성용이가 말을 건네온다. 나는 오늘 우리가 경기에서 잘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언제나 그렇지만 식사시간은 무척 짧다. 원래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 선수들은 밥을 빨리 먹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대단하다.
PM 1:00
점심식사 후의 오침 시간이다. 경기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수 있도록 경기 당일에는 틈틈이 잠을 많이 자둬야 한다. 하지만 어젯밤에도 푹 잔대다가 아까 아침을 먹은 후에 잠깐 낮잠을 자뒀던 터라 전혀 잠이 오질 않는다. 이 시간에 잠을 자는 선수들도 있지만 어떤 선수들은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하는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특히 우리는 이 시간 동안 경기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경기에서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혹은 우리 오늘은 특히 이 부분에 신경 써서 더 잘 해보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경기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짐과 동시에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잠을 자면서 몸의 피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좋은 이유다.
PM 4:30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간식 시간이다. 일어나자 마자 아침식사, 낮잠 자고 산책하고 나면 어느새 점심식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 간식시간이 된다. 남들에겐 너무 자주 먹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우리들은 한 번의 식사에 많은 양을 먹지 않는다. 조금씩 자주 먹음으로써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간식 같은 경우에는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다. 그 중에서도 바나나는 단골이자 인기메뉴다. 바나나라면 피로회복과 에너지 보충에 최고의 효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바나나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간식이 있다. 아. 이제 조금씩 경기가 가까워 옴을 느낀다.
PM 5:00
간식을 먹은 후 선수단이 모두 모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감독님의 말씀에 집중한다. 감독님께선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오늘 경기에서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그 후에는 팀 전제가 오늘 어떻게 경기를 치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다. 선수단 미팅 시간이 되면 모든 선수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바로 몇 시간 후면 시작될 경기에서 나는 어떤 플레이를 할 것인가 그리고 동료들과 어떤 내용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온 몸이 긴장하는 시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모든 선수들이 이 순간부터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정말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PM 6:30
선수단 미팅이 끝나자 마자 짐을 챙겨 호텔을 떠난다.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라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몸을 푼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과 팬들의 함성소리는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동료들과 함께 워밍업을 하고 간단한 볼 훈련을 하며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머리 속은 경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PM 8:00
입장 준비를 하고 출입구 안에서 잠시 기다리는 그 시간.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강하게 쿵쾅쿵쾅 거린다.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경기를 뛰어 봤지만, 경기 전의 이 극도의 긴장과 떨림은 쉽게 버리기 어렵다. 드디어 경기장에 입장하고 내 위치에 선다. 속으로 백 번씩, 천 번 씩 잘할 수 있다고 소리 친다. 그리고 이 경기는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휘슬이 울리면 숨을 한 번 내쉬고 눈에 힘을 주고 달려 나간다. 내 눈 앞의 공 하나, 나의 주위를 메우는 동료들, 그리고 경기장 가득한 팬들의 함성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PM 11:00
최고다. 오늘 우리 팀이 승리를 거뒀다.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오면서 ‘나이스! 브라보!’를 외친다. 정말 기분이 좋다. 경기가 끝나면 바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버스에 탄다.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다 되었고 늦은 시간임에도 버스 안의 분위기는 흥분으로 가득하다. 통쾌한 승리 후의 쾌감은 말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다들 오늘 치른 경기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며 실컷 웃고 떠든다. 몸은 피곤하지만 이 왁자지껄함이 나의 피로회복제다. 경기에서 진 날은 구리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 매우 조용하다. 다들 경기의 패인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있는 것이다. 그런 침묵은 피로한 몸을 더욱 불편하게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승리의 기쁨에 한껏 고조된 버스 안 분위기에, 나 역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즐겁게 가고 있다.
AM 12:00
어느새 구리 챔피언스파크에 도착했다. 다들 다시 옷을 갈아입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서로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피로가 몰려온다. 아무래도 경기를 뛰고 나면 많이 힘이 들기 때문에 늦은 시각이지만 꼭 밥을 챙겨먹는다. 밥을 먹은 후 침대에 누우면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경기장에서의 흥분이 또다시 밀려온다. 잠시 그 흥분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박나은 FC서울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