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5월 11일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발표 된 직후 있었던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가상 상황에 100% 녹여낸 것입니다.
2006년 5월 11일 구리 GS 챔피언스 파크
“김동진, 백지훈, 박주영 선수 축하 드려요.”
“감사합니다.”
동진: 휴, 이제 한 고개 넘었네.
지훈: 그러네요, 형, 실감나요?
동진: 실감? 아직도 얼 떨떨 한데? 그나 저나 어제 잠은 잘 잤니?
지훈: 아니요, 긴장 돼서 잠을 얼마나 설쳤는데요, 형은요? 눈이 충혈된 게 형도 잠 못 잔 것 같은데요?
동진: 충혈은 무슨,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긴 했지. 형이 토고 전을 못 뛰잖아. 그게 마음에 많이 걸리긴 하더라. 그렇다고 상황에 얽매여 주저 앉아 있을 수 만은 없는 문제였으니까. 걱정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나 스스로도 그 상황보다는 내 눈앞에 보이는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려고 많이 노력했어. 솔직히 말하면 최종 엔트리에 들 수 있을까 진짜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제 편안해.
지훈: 형, 저는요 축구 선수로 살아온 시간 중에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 것 같아요. 사실 어떤 선수가 엔트리에 자기 이름이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저는 끝까지 자신감 잃지도, 버리지도 않았어요. 아드보카트 감독님도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셨고, 걱정하시면서도 기대 많이 하고 계실 부모님 봐서라도 제가 자신감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 없고요.
동진: 그래, 뭐든지 자신감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야.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감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정말 공감 간다. 우리 지훈이 꽤나 의젓한데?
지훈: 의젓하긴요, 쑥스럽게. 참, 형도 경쟁 얘기 많이 듣죠?
동진: 응, 오늘도 기자 분들이 그 질문은 빼놓지 않고 물어보시더라. 많이 궁금해 하는데, 형 생각은 그래. 좋은 선수랑 비교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것 같아. 영표형 정말 대단하잖아, 좋은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많이 배우고 발전하게 되는 것 같아.
지훈: 맞아요, 그런데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포지션 경쟁에도 자신 있어요. 저랑 경쟁구도에 놓여 있는 선수들 보다 훨씬 앞서 있어서 자신 있다는 건 아니에요. 얼마나 대단한 선수들인데요 그런 의미는 당연히 아니죠. 다만, 남은 한 달의 준비기간을 더 충실히 보내겠다는 제 나름의 의지의 표현이에요. 팀에 꼭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동진: 우리 지훈이 정말 많이 컸구나, 형이 다 뿌듯하다.
지훈: 형 자꾸 왜 그래요, 쑥스럽다니까. 그런데 형이랑 이런 얘기 하니까 진짜 실감이 나는데요?
동진: 그래, 나도 이제 슬슬 실감이 난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2006년 5월 27일 인천국제공항
지훈: 우와, 취재진 진짜 많이 왔다.
동진: 왜? 긴장되냐?
지훈: 아니요 오히려 설레는데요? 축구를 시작하면서 월드컵 무대를 꿈꾸기는 했지만 그 꿈이 진짜 이루어 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꿈이 현실이 됐네요.
동진: 월드컵, 축구 선수들에겐 꿈 그 자체지. 그 이상 더 어떤 말도 필요 없는 것 같아.
지훈: 맞아요, 그런 꿈의 무대에 형, 주영이, 진규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가끔 걱정도 되고 챙겨줘야 하지만 맘 잘 맞는 주영이가 있어서 든든하고, 늘 친형처럼 챙겨주는 형이 있어 더 든든해요. 거기다 고등학교부터 청소년 대표팀, 이젠 국가대표까지 보통 인연은 아닌 진규까지 있으니 너무 행복해요!
동진: 지훈아, 갑자기 닭살이 돋는다.
지훈: 형!
동진: 장난이야, 임마. 나도 너, 주영이랑 독일 같이 가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함께 가지 못한 동료들 몫까지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겠지?
이제부터 어렵고 힘든 순간이 많을 텐데 맘 잘 맞는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으니까 힘이 많이 될 거야. 형도 최종 명단에 재진이 이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질렀다니까. 아테네 올림픽 대표 때도 함께였고 이번 전지 훈련까지 함께 하면서 둘 다 꼭 최종 엔트리에 들자고 약속했었는데 약속은 지켰으니까 이제 잘 하는 것만 남았다.
지훈: 재진이형 있다고 우리랑 안 놀아 주면 안 되요!
동진: 걱정 하지마! 형 몰라?
지훈: 어? 비행기 타야 되나 봐요. 얼른 가요 형.
동진: 같이 가!
2005년 5월 27일 스코틀랜드 글라스고로 향하는 비행기
지훈: 아~ 이제 출발이네.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맘껏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진: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냐?
지훈: 경기장의 붉은 물결 생각하니까 심장도 뛰고, 그렇게 선수들에게 최고를 선사해 주는데, 꼭 경기로 보답 해야지 생각하면서 각오도 단단히 하고, 4강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자신감도 다지고 있었어요.
동진: 아~4강, 정말 생각만 해도 좋다. 그래도 일단은 16강 넘어서 8강까지 가야 4강도 가는 거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죽어도 그라운드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뛰면 지금 우리가 희망하는 4강 무대도 눈앞에 현실이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최고를 선사해 주시는 것처럼 우리가 최고의 순간을 선사 할 수 있겠지.
지훈: 형, 그런데요, 지단은 말처럼 정말 세계 최고일까요?
동진: 갑자기 왠 지단? 왜, 지단 플레이가 제일 보고 싶어?
지훈: 네! 사실, 플레이도 보고 싶지만, 맞상대 해보고 싶어요.
동진: 맞상대? 야~ 멋진데? 그래, 그게 월드컵의 묘미이기도 하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자신감, 더 나아가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형에게 이번 월드컵이 그런 의미이기도 해. 형도 애쉴리 콜, 라이언 긱스의 플레이 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라이언 긱스는 월드컵 무대에서 볼 수 없지만, 라이언 긱스의 폭발적 공격력, 애쉴리 콜의 터프한 수비, 정말 배울게 많은 선수들이야.
지훈: 형한테도 배울 점 많아요. 그라운드 위에서의 성실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말도 잘 들어주고, 말도 재미있게 잘 하고, 그래서 형 주위에 사람이 많잖아요.
동진: 갑자기 왜 칭찬을 하고 그래?
지훈: 전 형이 좋으니까요. 어? 형 얼굴 빨개졌다. 카메라로 찍어 둬야지! 피하지 좀 말아요. 아, 근데 아까 눈 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요?
동진: 경기 끝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가 그라운드 위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 그런 생각 하다 보면 왠지 힘을 얻는 것 같아서.
지훈: 형, 우리 약속하나 할래요? 이건 진짜 중요한 건데요, 다치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동진: 난 또 뭐라고, 그래! 약속하자. 너, 나, 주영이,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건강한 모습 잃지 말자.
지훈: 그럼요! 우리 사전에 부상이란 없는 거에요!
동진: 그런데 주영이는 뭘 하길래 조용하냐? 표정이 꽤나 진지해 보인다?
지훈: 글쎄요? 야, 주영아!
지금 이 순간 주영의 귀엔 동진, 지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들리는 것은 단지 독일 월드컵을 향해 자신을 단단히 하는 당찬 각오의 메아리뿐. 주영은 그 메아리를 자신의 일기장에, 더 나아가 자신의 머리와 심장에 적어 내려간다.
2006년 6월 23일 하노버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VS스위스 경기시작 15분 전
지훈: 주영아, 드디어 오늘이다! 잊지 않았지?
주영: 어떻게 잊어, 꿈에서도 못 잊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정에 단 1%로도 남기지 말고 다 쏟아 붓자고! 스위스에 무릎 꿇는 건 청소년 대표팀 경기로 족해.
동진: 지훈아, 주영아, 준비 됐지?
지훈·주영: 네!
동진: 경기종료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결과 지어 질 수 없어. 너희와 형,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와 FC서울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죽어도 그라운드 위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1초 마저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자. 종료휘슬이 울리고 난 뒤 웃을 수 있는 권리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거야.
동진·지훈·주영: 자, 가자!
그들의 눈 앞에 푸른 그라운드가 보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외치는 붉은 함성이 들린다.
이 글은 지난 5월 11일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발표 된 직후 있었던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가상 상황에 100% 녹여낸 것입니다.
경기에 대한 예상을 녹여내지 않은 것은 예상은 예상일 뿐이라는 간단하지만 너무나 확실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 나타난 그들의 각오와 월드컵을 바라보는 마음은 6월, 다시금 전해져 올 붉은 감동이 단지 예상이 아닌 실제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지금껏 투혼이라는 채찍으로 자신들을 다스리고, 열정이라는 믿음으로 주저 앉으려는 자신들을 일으켜 세워 온 그들이 6월,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공희연, 이규원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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