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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9월호]김동석의 성장스토리

2006-09-01



8월 6일, 파주 NFC. 대표팀 소집 후 가진 첫 훈련이 시작 되었다. 비록 연습게임 이었지만 연습답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장함 마저 느껴질 정도. 그런 그 곳에, 이름만 대도 온 국민이 알만한 스타 선수들 틈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선수가 있다. 작은 키,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 이곳 저곳을 열심히 뛰더니 결국 겁 없이 선배들의 공을 뺏어내고야 만다. 당돌하다. 잘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화려하지만 깔끔한 드리블, 그리고 이어진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중거리 슛팅. 자로 잰 듯, 골이 감겨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훈련모습을 관찰하던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저 선수 누구야?”

누굴까? 아직은 앳된 얼굴에 크지 않은 키, 그래서 왜소하다 느껴질 법 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오히려 ‘다부지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선수. 그렇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동석’. ‘작은 고추가 맵다’는 옛 속담은 그를 두고 만들어졌나 보다 싶을 정도다. 너무 매워서 혀끝이 얼얼하게 마비가 되는 느낌,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땀을 뻘뻘 흘려본 기억이 있는가? 아마도 김동석을 상대하는 선수들은 맵다 못한 그의 플레이에 이러한 기분을 느껴보았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리지만 그래서 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FC서울의 미래’ 김동석 선수. 짧지만 길었던, 그리고 앞으로 쭈욱~ 계속될 그의 축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제1막 1장
초등학생 동석이의 축구 입문기
김동석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야구를 해보라고 권하셨다고 한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저를 야구선수로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왠지 야구보다는 축구에 마음이 더 끌렸어요. 그래서 야구 대신에 축구를 배워보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죠.” 이렇게 그는 처음 축구와 만났다고. 김동석 선수가 처음 축구를 배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차범근 축구교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었던 만큼 부담도 없었다. 공을 찰 때면 항상 즐거웠고 행복했다. 실력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보통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잘 하는 축에 속한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차범근 축구교실에 ‘볼 리프팅 테스트’ 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테스트를 통과한 몇 안 되는 선수들 중에 그도 포함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면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던 부모님도 그때부터 김동석 선수가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켜 주셨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던 때 맡았던 것은 윙백 자리였어요. 그러다가 6학년 때, 지금 뛰고 있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옮겨왔죠.”



*사진 뒷 줄 맨 오른쪽이 중학교 시절의 김동석


제 1막 2장
2군 선수로 산다는 것
중학교 3학년 때, 드디어 김동석의 축구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우연히 찾아왔다. “FC서울 2군 선발 테스트를 보려는 친구를 따라서 구경을 갔어요. 팀을 나누어 연습경기를 하는데 선수 한명이 모자란 거에요.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제가 경기를 뛰었고 그때 저를 보신 조광래 감독님이 FC서울 2군 입단을 권유하기 시작하셨죠.”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쉽지 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쉽게 내려졌다. 축구선수라면 프로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고 또 그곳에서 인정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 결정의 이정표가 되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기에 남들보다 빠른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 입단 결정 마감일 하루 전날 부모님께 뜻을 말씀 드렸고 언제나 그를 믿고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시는 부모님께서도 큰 반대 없이 따라주셨다. 그렇게 FC서울 2군 선수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축구를 하는 선수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그들은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축구를 하다가 언제든지 진로를 바꿀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축구가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축구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절실함과 집중력이 제가 축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어린 나이에 축구만 바라보기엔 힘들지 않았을까?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았을까?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아쉽죠. 친구들이 놀러 다니는 것을 볼 때 부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때보다는 사실 지금이 더 부러워요. 이제 친구들이 대학 새내기가 되어 캠퍼스 생활을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학교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남죠.” 하지만 후회는 없다는 김동석. 학교에서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큰 세상에서 축구를 즐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이다.

첫 시련 앞에서
지금의 김동석이 있기까지 한계단 한계단을 착실히 밟아 온 그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가 축구인생에서 맞이한 첫번째 고비였다. “FC서울에 입단하고 나서 2년차가 되던 해였어요. 무릎을 크게 다쳐서 수술을 한번 했는데 재수술까지 하게 되었죠. 그래서 1년을 쉬었어요. 그땐 뛰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경기를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죠.” 이 심정, 겪어 보지 않고서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신과의 싸움을 잘 이겨낸 것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었어요. 신앙적인 부분도 저를 든든히 붙들어 주었고요.” 시련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시련을 인내한 그는 이제 더 크게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가장 힘들었던 이 1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며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김동석. 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때의 절실한 마음을 기억하며 지금, 뛸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제 2막 1장
현재에 충실하기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K리거다. 어린나이에 프로에 당당히 데뷔하였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이 눈독 들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소유자다. 한단계 한단계 묵묵히 올라가며 성장하는 선수이기에, 그가 느꼈을 ‘K리그’라는 이름의 무대는 어떠한 곳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확실히 2군과는 차이가 있어요. 부담감도 더하고 심리적인 압박도 느껴요. 일단 관중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 이 부분은 경기를 뛰다 보면 가장 큰 힘을 얻는 원동력이기도 해요. 이건 뒷이야기이지만, 경기 앞두고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들어올 때 창문너머로 관중석이 살짝 보이거든요. 관중이 많이 있을 때는 선수들끼리 이야기해요. ‘오늘 관중 정말 많다’ 이런 식으로요. 그럼 서로 더 이상 말은 안 해도 마음 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죠. 경기력 면에서 2군경기와 비교해 본다면 빠르고 정확한 볼 처리가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일 큰 어려움은 ‘적응 문제’ 같아요. 경기장 분위기나 경기를 실제로 풀어감에 있어 흐름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기 흐름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 유망주는 괜히 유망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유망주’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동석이다.

“체력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웨이트에 신경을 쓰고 있고요. 확실히 K리그는 힘과 체력이 필요한 곳 이더라고요. 경험도 요구되고요. 경험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힘과 체력을 쌓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동석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거칠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태클, 몸싸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에 대한 김동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래 제 플레이가 그렇게 거칠지 만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K리그에 와보니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 남기가 힘들 더라고요. 몸싸움에서 밀지 않으면 밀리고, 공은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니까요.” 이렇듯 그의 말 속엔 뼈가 있다. 부드럽고 흘러가는 듯한 말투지만 잘 들어보면 결코 흘려 들을 수 없는 말뿐이다. 예사롭지 않은 눈빛까지도. 이 선수, 과연 보통이 아니다.

대표 선수가 되다
베어백 호 1기 명단이 발표되자 ‘깜짝 발탁’이라며 주목 받은 그였지만, 그를 알고 있던 FC서울 팬들이라면 결코 ‘깜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대표팀에 합류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아직도 꿈만 같아요.” 국가 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파주 숙소에서 먹고 자는 것부터 선배님들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제겐 처음 보고 느끼는 것들이니까요.” 그렇다면 파주에 다녀 온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요. 직접 부딪치고 느껴서 그런지 자신감이 생겼어요. 구체적인 목표도 그려지고요. 목표가 구체화 되니까 요즘 들어 축구가 더 즐거워요. 아, 미니홈피 방문자수가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 같아요. 평소보다 10배가 넘었으니까요. 제 홈피가 아닌 줄 알았어요.”



스무 살 청년의 일상
미니홈피 이야기를 하며 쑥스러운 듯 미소 짓는 김동석. 그렇다. 그는 축구선수 이전에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한창 놀고싶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싶은 나이 아닌가. 그렇다면 ‘스무 살 청년 김동석’ 은 어떤 모습일까? “팀에서는 (고)명진이랑 가장 친해요. 서로 모르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다 털어 놓아요.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요. 사실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귀찮아 하는 편이라 잘 안 나가는데 명진이가 부르면 특별히 나가죠. 생각해보니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는 것 같네요(웃음).”
이야기를 나눠보기 전,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성격 역시 거칠 것 같고, 경기장에서 인터뷰 하던 모습만 놓고 보면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 “제가 그럴 것 같다고요? 전혀 아니에요. 사소한 것에 잘 삐치기도 하고 질투도 많아요. 지저분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같이 방 쓰는 형들이 짜증 낼 때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에요. 상대가 후배던지 선배던지 일단 솔직한 편이에요. 오히려 선배님들도 이런 면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할말은 하되 예의를 지키는 후배, 예뻐 하지 않을 선배 어디 있을까. “팀에 계신 모든 분들이 잘 해주세요. 민성이형이나 병지형께서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요즘엔 을용이형에게도 많이 배우고요. 은중이형은 항상 잘 해주셨고요. 재수형이나 태은이형, 치곤이형과는 장난을 많이 치고, 동원이형은 위닝의 지존이에요(웃음). 명진이와 진형이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고요. 힘들 때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니까요.”

주위에서 바라본 ‘김동석’
“영리해요. 볼을 가질 수 있는 선수에요. 체력을 좀 더 보강하고 경험도 쌓이다 보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가 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착하잖아요, 조용하고. 네? 조용하지 않다고요?(웃음) 글쎄요, 또래들과 있을 때는 장난 잘 치는지 몰라도 훈련할 때 만큼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장수 감독) ”

“제가 잘 해준다고 그래요? 잘해준 것 별로 없는데.. 착해요 동석이. 열심히 하고. 미드필더로서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갖추고 있잖아요- (김은중 선수)”

“성실하고 겸손해요. 국가대표 발탁되고 나면 자만하거나 거만해질 수 있는데 그런 것 없이 처음 모습을 잃지 않더라고요. 착하죠. 나이는 저보다 어려도 프로 선배잖아요(웃음). 그라운드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여유와 센스도 빛나는 것 같고요- (안태은 선수)”

“빠르고 기본기가 좋은 선수에요. 평소에는 비밀 이야기도 허물없이 나누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예요- (고명진 선수)”



제 2막 2장
그를 위한, 그에 의한, 그의 ‘축구’
축구란 ‘휴식처와 같은 존재’ 이다. 축구를 하는 이유는 ‘내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 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진심이 느껴지는 이 말을 남긴 선수는 누구일까? 예상대로 모두 김동석이 남긴 명언이다. 인생의 전부인 축구가 그에겐 ‘휴식처’ 라니. 일에 지치고 시달려 한번쯤 쉬어 가고픈 우리네와는 분명 다르다. 따로 쉬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인생의 전부인 축구가 즐거운 휴식처와 같은 존재이니까.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고만 있을 김동석이 아니다. 그는 과연 어떤 축구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는 것일까? “차범근 감독님처럼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그런 선수. ‘미드필더’ 하면 ‘김동석’ 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이 자리에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미드필더란? “미드필더는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잖아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어요,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게. 공수전환이 빠른 것이 현대축구의 흐름이잖아요. 미드필더는 빠른 공수전환을 위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이 요구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계속 될 그의 축구 이야기
그는 많은 시간을 축구와 함께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축구와 함께 걸어왔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이 ‘축구선수 김동석’ 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앞에 지금, 그가 서 있다. 아마도 계속될 시간 속에 펼쳐질 그의 활약이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김동석 선수가 자신에게 하는 기대는 무엇인지 또한 자신이 품고있는 목표는 어떠한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후기리그가 시작 되었잖아요. 꼭 우승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싶어요. 이것이 제가 제일 가까이 품은 목표에요. 그리고 팀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팀에서 활약하고, 팀에 충실하고 헌신할 때 인정 받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좀 더 멀리 바라본다면 올림픽 대표, 월드컵 대표 같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도 목표고요.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것은 축구선수라면 다 같은 생각일거에요. 마지막으로는 이영표, 박지성 선수와 같이 빅리그에서 뛰는 것이 제가 가진 가장 큰 꿈이에요.”

그는 꿈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결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어색함도, 멋쩍음 따위도 없었다. 뚜렷한 목표와 확신,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듯 ‘당찬 신인 김동석’ 에게도 존경하는 축구선수는 과연 존재할지, 존재 한다면 누구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러자 그는 프랑스의 마케렐레와 포루투갈의 데쿠를 꼽는다. 그리 크지 않은 키로 미드필더로서 역할을 멋지게 해낸다는 것이 그의 평. 그들을 닮고 싶지만 그라운드에서는 자신의 색깔로, 자신만의 축구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말하는 당돌한 축구선수, 그 이름은 바로 ‘김동석’ 이다.

글=이규원 FC서울 명예기자, 사진=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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